길게 뻗은 팔이 서서히 기울면 우리는 겉껍질을 부비며 공기 속으로 퍼지는 여름을 맡지. 나무 사이마다 환하게 떠오르는 진동들. 출렁이는 액과를 열어 무수히 흰 종들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어봐. 잎사귀들이 새로 돋은 앞니로 허공을 깨무는 동안.
(후략)
감상) 여름이 지나가다보다. 그 사이 비파가 왔었던가, 복숭아나 해바라기가 왔었던가, 아무 것도 각인되지 않은 여름이 어느 새 지나가다 보다 아무리 주먹을 꼭 쥐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던 사람, 사랑, 베란다 앞에 세워진 빨랫줄이 텅 빈 오후 그 사이로 소리도 없이 빠져나가는 구름.(시인 최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