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은 가족 사이에서 발생한 재산범죄에 대해 개입을 자제하려는 취지에서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를 적용한다. 예를 들어 절도죄의 경우 피해물건의 소유자와 점유자 모두 친족 관계가 있는 경우 형을 면제해준다.

의사 남편과 이혼 소송 중인 아내와 아들이 몰래 병원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 금품을 가져 나왔다면 절도죄로 처벌을 받을까.

대구지법이 지난 10일 선고한 사건의 경우 재물에 대한 타인의 점유를 침해함으로써 성립하는 절도죄의 ‘점유’가 쟁점이었는데, 남편 A씨와 검찰은 범행 당시 병원의 소유자는 자신이었지만 점유자는 관리를 위임한 지인에게 있어서 친족상도례 적용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절도범인이 피해물건의 소유자나 점유자 중 어느 한쪽과의 사이에서만 친족 관계가 있는 경우에는 친족상도례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서다.

사연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남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A씨는 아내 B씨와 이혼 소송 중이었는데, A씨가 2015년 5월 31일 피보호자간음죄로 체포된 이후 구속됐다.

아내 B씨와 아들은 이혼소송을 제기할 무렵부터 생활비와 학비 등의 지급 중단으로 어려움을 겪은 터여서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는 진료비 급여 상당액을 A씨가 은닉한 것으로 의심했다.

B씨와 아들은 그해 6월 10일 오후 A씨가 운영하는 의원 출입문을 소화기로 부수고 들어가 노트북과 병원 서류 뭉치를 훔쳤고, 6월 20일에도 열쇠수리공을 불러 잠금장치를 부수고 떼어낸 뒤 병원으로 침입해 현금, 의사자격증, 직원이력서 등이 든 금고 1개를 들고 나왔다. 이틀 뒤에도 다시 병원에 들어가 제약회사 명함과 명함집을 가져 나오기도 했다.

대구지법 제1형사단독 황순현 부장판사는 특수절도,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재물손괴 등),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주거침입) 등의 혐의로 기소된 B씨와 아들에게 각각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물손괴와 주거침입죄 유죄로 인정했지만, 특수절도 혐의에 대해서는 병원 내 물건의 소유·점유자인 A씨의 직계혈족과 배우자인 점을 근거로 친족상도례를 적용해 형을 면제한 것이다.

법원은 A씨와 병원 관리 위임자인 지인이 아내 B씨의 병원 침임이 있고 난 이후 ‘금고 안에 타인 소유의 물건이 있었다고 해야 한다’는 등으로 친족상도례 적용을 피하려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사실이 있고, B씨의 절도 범행 이전에 지인에게 위임장을 작성해줬다는 씨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점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A씨가 아내와 아들을 처벌하기 위해 지인이 병원을 점유하고 있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황 부장판사는 “A씨가 체포·구속된 이후 병원 열쇠를 위임자인 지인이 아닌 자신과 병원 직원이 관리한 점, 아내와 아들에게 병원 관리 위임 사실을 알리지 않은 점, 구금상태에서도 지인을 통해 직원 월급 지급이나 시급한 자금 집행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관여하면서 지시했던 점 등에 비춰보면 이 사건 병원 내의 물건에 대해서는 지인이 아닌 A씨가 계속 지배·점유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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