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절절 전설·역사 가득한 해안길…숨은 비경에 감탄

▲ 상생의 손
호랑이 꼬리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장막 같은 구름을 뚫고 나온 햇살이 바다위에 은빛 가루를 뿌려 눈이 부신다.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김정호는 호미곶을 일곱 번이나 답사하였다고 한다. 그런 다음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동쪽이라는 확신이 서자 호랑이 꼬리 부분이라고 기록하였다고 한다.

상생의 손 앞에 잠시 서 본다.

“어, 손이다. 엄마. 바다에서 거인 손이 자라고 있어.”

가족이랑 피서를 온 서너 살짜리 남자아이가 손가락으로 상생의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의 기발한 표현에 웃음이 터졌다. 바다에는 오른손이, 육지에는 왼손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그 때문일까. 호미곶은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으로도 많이 알려졌지만 화합을 원하는 손 조형물로도 유명하다. 새해 아침이면 거대한 손 앞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수중등대 교석초
여행객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구만리 어촌을 친구 삼아 걷는다. 해풍이 불어와 머리칼이라도 흔들어 주었으면 싶은 날씨다. 준비한 얼음물은 금방 녹았고 갈증은 계속 되고 내리쬐는 태양은 따갑고 파도는 소심하게 방파제에 와 부딪친다. 평상시 거친 파도로 악명 높은 교석초 주변이 오늘은 고요하다. 너울이 겹겹이 몰려오지도 않는다.

이곳엔 전설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영덕 축산에 있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물살이 잔잔한 날을 택하여 돌다리를 놓기 시작한 마고할멈이야기부터 100여 년 전 일본 도쿄 수산강습소 실습선이 거친 파도에 좌초하면서 교관 1명과 학생 3명이 조난당한 사고도 있었다. 이후 수중 등대가 세워졌다. 실습선 조난 기념비가 세워졌지만 해방 후 훼손됐다가 1971년 재일교포가 다시 세웠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을 능지처참해서 시신에서 잘라낸 왼쪽 팔을 수장한 곳이기도 하다.

독수리 바위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까꾸리계(鉤浦溪)’라 부른다. 까꾸리계는 ‘구포계’라는 한자어 지명인데 ‘갈고리 구(鉤)’자를 써서 지은 것이다. 포항 지역에서 가장 바람과 파도가 거칠다보니 풍랑이 칠 때면 청어 떼가 해안까지 떠밀려 와 갈퀴로 끌어 담을 정도였다고 한다.

바로 앞 해안가엔 독수리 형상을 한 바위가 날개를 접은 모습으로 근엄하게 앉아 있다. 이 독수리 바위는 일몰 사진에 모델로 자주 나온다. 독수리에게도 날고 싶은 꿈이 있겠지. 앞으로 수십 년 더 풍화작용이 일어나 더 날렵해지고 더 가벼워지면 언젠가 바다 위로 날아올라 구만리에 전설 하나 더 전해질지 모르겠다.

해안을 따라 걸으면 보이는 모든 것이 전설이고 설화고 철학이고 역사다. 그래서 길 위에 서면 마음이 밝아지고 귀가 열리고 눈이 맑아진다. 그 맛에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모양이다. 마음에 담을 수 없는 것은 카메라에 담고 카메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글로 남긴다.

해파랑길 대부분은 동해안 국토종주 자전거 길과 연결되어 있다. 길이 늘 그랬듯이 오늘도 해안도로와 차도를 번갈아 걷는다. 알록달록한 구명조끼를 입은 아이들이 갯바위 주변에서 보트 위에 올라타 물놀이를 하고 있다. 아빠로 보이는 남자는 물안경을 쓰고 뜰채를 들고 물속을 노려보고 섰다. 햇볕에 탄 등판이 구이판처럼 달아올랐다.

아홉마리 용이 승천한 구룡소
대동배 1리 마을회관에서 바닷길로 내려섰다. 주인이 직접 고기를 잡아 막 썰어 준다는 횟집을 지나 길의 끝에 다다르니 데크 로드가 나왔다. 입구에 구룡소에 관한 안내 표지판이 있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할 때 뚫어진 굴이 아홉 개라 구룡소(九龍沼)다. 파도칠 때 그 굴로 유입된 바닷물이 용이 불을 뿜어내는 것 같고 그 소리가 천지를 울리듯 우렁차다고 하니 파도가 거친 날 꼭 한 번 와 볼 일이다.

해안 절벽엔 데크 길 공사가 한창이다. 이 코스가 호미곶 해안 둘레길 중 3코스인 ‘구룡소길’(6.5㎞)이다. 길이 빨리 완공되어 환상의 코스를 신나게 걷는 상상을 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 대동배 보건소 앞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인도가 따로 없는 숲길이 이어졌다. 약간 오르막이라 숨이 차다. 인도가 따로 없고 큰 특색이 없는 야트막한 산이 양옆으로 이어져 약간 지루하다. 매미소리 들으며 약이 바짝 오른 것처럼 달아오른 아스팔트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장군바위
흥환2리 방파제가 보이고 도로가 해변에 특이한 바위가 있어 자세히 보니 장군바위다. 투구를 쓴 모습이라 해서 이리저리 살펴보며 카메라에 담아본다. 곧이어 언덕길을 내려서니 발산리 돌비석이 눈앞에 있다. 바닷가라 횟집이 즐비하다. 검은 돌장어집이 유독 눈에 많이 띈다. 길목에 구룡포읍 석문동에서 동해면 흥환리까지 말을 관장하였다는 장기 목장성비(長기牧場城碑)가 있다.

흥환 간이 해수욕장은 휴가철이라 제법 붐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물 풍선 터지는 소리처럼 시원하고, 고기 굽는 냄새는 송림 사이로 퍼져나간다. 하늘 정원 펜션 앞에 서니 호미반도 둘레길 200미터 우회전 이정표가 보인다. 늦은 오후로 갈수록 하늘은 더 맑아지고 뭉게구름은 환상적이고 해초 냄새는 상큼하다. 하선대 펜션 매점에서 잠깐 쉰다. 스킨스쿠버 동호회 회원들이 평상에 모여 앉아 장비를 착용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연오랑세오녀길
이곳은 호미곶 해안 둘레길 중 2코스인 선바위 길이다. 둘레길이 완공되면 해파랑길과 연계된다고 해서 코스를 이쪽 방향으로 잡아보았다. 1코스는 연오랑 세오녀길(6.1㎞)길이고, 3 코스는 구룡소길(6.5㎞), 4코스 호미길(5.3㎞)로 이어진다. 매점 앞 검둥 바위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연오랑과 세오녀를 일본으로 싣고 갔다는 바위다. 두 사람이 일본으로 떠난 후 신라에는 해와 달이 없어졌지만 연오랑이 준 비단 덕분에 해와 달이 다시 생겼다는 설화다.

흰바위가 많아 흰덕에서 흰디기로
연오랑과 세오녀를 싣고 간 검둥바위
데크 길을 걷다 만나게 되는 하선대는 옛날 용왕이 매년 칠석날 선녀들을 초청하여 춤과 노래를 즐기던 바위다. 다니다 보면 절벽 아래로 흰바위가 눈에 많이 뛸 것이다. 힌디기는 옛날 성이 노 씨인 사람들이 처음으로 정착하여 살면서 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유래되었고, 흰돌이 많은 건 화산활동이 많았던 지역이라 화산성분의 백토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큰 구멍이 있는 흰 바위는 소원을 빌면 부자가 된다는 전설이 있으니 가던 길 멈추고 빌어볼 일이다. 그동안 절벽과 높은 파도와 군사지역이라 숨겨져 있던 비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용왕이 사랑한 선녀를 만난 기분이다.

▲ 글 임수진 소설가
■ 여행자를 위한 팁
△호미곶 해안 둘레길 소개
호미반도해안 둘레길은 한반도 지도에서 일명 호랑이꼬리 부분이다. 영일만을 끼고 동쪽으로 쭉 뻗어 나와 있는 동해면과 구룡포, 호미곶, 장기면까지 해안선 58㎞를 연결하는 트레킹 로드이다. 해질녘이면 기암절벽 사이로 넘어가는 석양이 아름답다. 해가 지면 포스코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 교통안내
△호미곶
대중교통: 시내에서 200번 좌석버스 승차·구룡포 종점(환승센타) 하차 후 호미곶행 버스 이 용 (40분 간격)
자가용 이용 : 시내에서 구룡포, 감포 방면 31번 국도 이용하여 구룡포읍내 진입 후 925번 지 방도 이용하여 대보방면으로 20분 정도 가다 보면 우측 해안에 위치.
△호미반도둘레길
티맵에서 계림횟집 검색(포항시 남구 동해면 입암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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