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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새경북포럼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오늘날 사용하는 아라비아 숫자는 인도에서 최초로 창안됐다. 기원전 이천오백 년경 청동기 시대의 인더스 문명은 상업이 번성하면서 계산이 긴요해졌다. 굽타 왕조가 들어선 이래로 인도인은 숫자를 이용해 손쉽게 거래를 하였고, 중요한 ‘0’의 개념이 만들어진 것도 이때였다. 참고로 BC와 AD는 영의 년이 없다. 기원전과 기원후를 나누는 예수의 탄생도 BC 4년쯤으로 본다.

아라비아 상인에 의해 도처로 보급된 숫자는 세계 공통의 기호. 국가별 문자와 언어는 달라도 ‘0, 1, 2, … 7, 8, 9’ 표기는 만국의 공용어로 간주된다. 지구촌 소통을 원활하게 이끈 절묘한 발명품. 덕분에 해외여행 시 호텔의 방 번호를 손쉽게 찾아가고, 물건의 가격표는 가치 산정이 수월하다.

사람들은 숫자에 길흉의 의미를 부여하고 만족감과 불쾌감을 느낀다. 이런 철학적인 가치를 탐구하는 것도 수학적 영역이라니 놀랍다. 수학을 모든 학문의 스승으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대 로마엔 0이 없었다. 동양에서 고안된 0을 로마인은 마뜩잖게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다는 뜻임에도 다른 숫자 뒤에 놓으면 열 배씩 불어나니 황당했던 것이다. 당시의 문서엔 1부터 9까지만 적혔다. 영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숫자 가운데 7은 행운의 수로 반긴다. 주사위 놀이를 즐기는 서양인에게 가장 확률이 높은 수로서, 그 조합이 여섯 가지로 제일 많기 때문이다. 또 성경에선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이 7일째 되는 날은 안식했다고 해서 성스럽게 여긴다.

내게도 기분 좋은 은행 통장이 하나 있다. 일련번호가 ‘007777’인 입출금 계좌로 개설한 지도 어언 삼십 년이 된다. 요행의 숫자가 겹겹이 늘였으니 돈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을 가졌고, 그래선지 큰 어려움 없이 세월을 달려왔다는 자기 위안을 갖는다. 학창 시절 수학을 싫어했으나 스르르 진짜 수학에 빠져든 셈이라고나 할까.

도로법상 도로의 종류는 고속국도, 일반국도, 지방도 등 일곱 가지이다. 홀수 번호는 남북축, 짝수 번호는 동서축 노선에 붙여 구분한다. 포항은 7번 국도를 끼고 있는 도시이다. 부산에서 출발 울산을 거쳐 경주 포항 영덕 울진을 지나 강원 고성까지 이어지는 도로. 무려 484km에 이른다. 동해 바닷가를 품은 아름다운 풍광이 일품이다. 명칭도 7번이니 왠지 운수가 넘칠 것 같은 어감. 한데 9번 국도는 북한 지역만 통과한다니 언젠가 통일이 돼야 달릴 듯하다.

사적으로 7번 국도와는 끈질긴 인연을 맺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영남을 경유하는 7번 국도변 도시는 거의 살아 봤다. 우리 경북의 최북단 울진만 패스했을 뿐이다. 부산부터 영덕까지 모든 고장을 이삼 년씩 섭렵하곤 영주서 퇴직했으니 말하자면 행운아다.

게다가 포항에 터전을 잡았다. 불가의 오천 겁이라는 이웃집 인연에 비겨 그들과의 만남은 몇 겁이나 될까. 물론 수차례 전학을 다닌 애들한테는 미안하나, 다들 공직에 몸담아 고만고만 살아가기에 다행히 아닌가 싶다.

근자에 동해와 삼척을 끝으로 7번 국도의 탐방을 마쳤다. 한 번에 한두 곳씩 하는 여정이라 이태가 걸렸다. 한반도의 자연 지리적 상징인 백두대간을 왼편에 두고, 검푸른 청정 동해를 배경으로 그대의 실루엣을 오른편에 새긴 환상의 드라이브 나들이. 마음이 적적할 때는 7번 국도로 나가자. 상큼한 ‘좌백두 우동해’ 산자수명한 낭만 가도가 일상에 찌든 당신을 반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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