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오는 밤엔
빗소리 쪽에 머릴 두고 잔다

어떤 가지런함이여
산만했던 내 생을 빗질하러 오라

젖은 낙엽하나 어두운 유리창에 붙어
떨고 있다

가을비가 아니라면 누가
불행도 아름답다는 걸 알게 할까

불행도 행복만큼 깊이 젖어
당신을 그립게 할까

가을비 오는 밤엔
빗소리 쪽에 머릴 두고 잔다




감상) 며칠 맑음, 당신은 흐림보다는 맑음 쪽에 있다. 그래서 며칠은 당신이 잘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 환한 아침이 불편하다. 나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아직 머뭇거리고 있는 중이다. 희미하게 당신이 거기 서 있는 듯 보이지만 당신은 나를 볼 줄 모른다. 맑음 쪽에서는 어두운 방 안이 보이지 않는다. (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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