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계실 때에는 겨울밤이 짧더니
당신이 가신 뒤에는 여름밤이 길어요.
책력의 내용이 그릇되었다 하였더니
개똥불이 흐르고 벌레가웁니다.

긴 밤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긴 밤은 근심바다의 첫 물결에서 나와서
슬픈 음악이 되고 아득한 사막이 되더니
필경이 절망의 성 너머로 가서
악마의 웃음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당신이 오시면
나는 사랑의 칼을 가지고 긴 밤을 베어서
일천 토막을 내겠습니다.
당신이 계실 때는 겨울밤이 짧더니
가신 뒤는 여름밤이 길어요




감상) 이제 여름은 갔다. 아무런 상처를 남기지 않고 갔으므로 없는 계절이나 다름없었다. 그 여름 동안 기다렸던 건 만남 없는 이별과 돌풍을 동반한 천둥소리, 아무 것도 오지 않았으므로 상처 없는 흉터가 남았다. 그리고 여름은 갔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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