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물살 가르며 짜릿한 쾌감 느끼며 연안녹색길 올라

▲ 칠포해수욕장
아직은 해가 뜨기 전. 죽천교에 내려서니 하늘도 땅도 벌겋다. 오른쪽으로 바다, 작은 솔밭을 끼고 빠른 걸음을 옮긴다. 저 멀리 해상크레인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가까이는 잠에서 깨어난 갈매기 떼가 일제히 날아오른다. 밤과 낮이 몸을 바꾸는 순간이다. 해다. 붉은 해가 수평선 위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죽천길에서 일출을 보게 되다니, 눈이 부시다.

어둠에 묻혀있던 길이 훤하게 드러났다. 골목길에 세워놓은 스핑보드가 마을의 어떤 상징물처럼 다가온다. 바닷가 횟집들이 줄을 서있고, 해파랑가게를 겸한 마을회관 옥상 위에는 새마을기와 태극기가 찬란한 빛 아래 나란하다.
죽천길에서 해맞이
포항영일신항만 방파제에서
죽천 해변을 따라 들어선 우목리. 둥근 해안선을 따라 붙어선 마을이 우묵한 항아리 속에 든 것처럼 아늑하다. 해안길을 벗어나 우목리 우체국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죽천초등학교다. 학교 벽화에 눈도장을 찍으며 경사진 길을 오른다. 양 옆으로 소나무 숲을 끼고 포장도로를 내려서니 용한리 교차로다.

용한(龍汗里)은 1914년 용덕(龍德)과 소한(小汗)을 합쳐 개명한 이름이다. 소한은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냇물에 땀을 씻기 위해 주민들이 모여든다고 해서, 용덕은 마을 지형이 큰 용이 엎드려 있는 것과 같아 용의 덕을 입어 살아가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 한다. 마을 사람들은 용의 입안에 해당하는 곳에 제당을 지어 동제사를 지내며 5년마다 풍어제도 지내고 있다.

교차로 건너 오른쪽에 붉은 화살 표시가 보인다. 컨테이너 전용 부두인 포항영일신항만으로 들어선다. 자전거 타고 달리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이고 대체적으로 조용하다. 막힘없이 길게 뻗은 길, 무념무상의 상태로 걷기에는 더없이 좋은 코스다. 포항국제컨테이너터미널 앞에 자동차 한 두어 대 보이고 여기도 조용하다. 인적 없는 길을 따라 얼마나 갔을까.
어업기술센터 돌고래 모양의 건축물
뜬방파제를 앞에 두고
서퍼시티
해변에 낚시 가게들이 줄을 서 있다. 스핑 강습을 한다는 입간판도 보인다. 방파제로 가는 길 끝에서 철제 쪽문으로 들어선다. 세상에 강태공들은 여기로 다 몰려든 듯하다. 저 멀리 섬으로 이루어진 신항만 뜬방파제(영일만항 북방파제)에도 낚시꾼들이 줄을 섰다. 사계절 내내 어종이 풍부하여 어시장으로 불릴 정도라 한다. 요즘에는 농어에 볼락, 감성돔, 무늬오징어까지 잡힌다하니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뜬다.

신항만방파제를 옆에 끼고 있는 용한리해수욕장이다. 서퍼시티라는 입간판이 이채롭다. 여기가 요즘 한창 주목을 받고 있는 서핑의 메카다. 이곳이 서핑 포인트로 서퍼들을 불러들이면서 포항신항만이 건강한 에너지를 받고 있다. 서핑을 나가기 위해 물옷으로 갈아입는 풍경과 서핑을 끝내고 물옷을 말리는 풍경이 교차하는 이색적인 공간이다.

서핑의 성지를 뒤로 하고 바다 둑길로 방향을 잡는다.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선다. 따로 길이 없으니 발 내딛는 곳이 길이다. 사초과 식물들이 발목을 핥는다. 흙과 모래가 뒤섞인 해변에 발이 푹푹 빠져든다. 삭정이 끝에 걸쳐있는 검은 비닐봉지들이 멀리서 보면 마치 해구(海口)에 설치예술품 같다. 녹슨 철조망을 넘어서니 공유수면이라는 간판이 해변을 지키고 있다.
해오름 전망대
해변에 인접해 있는 대구교육해양훈련원 뒷마당을 가로지른다. 용곡리, 용천리, 흥안리를 달려온 곡강천, 수면이 빛을 받아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칠포해수욕장으로 들어선다.

이곳은 수군만호진이 있던 곳으로 고종 8년, 동래로 옮겨가기 전까지 군사 요새로 7개의 포대가 있는 성이라 해서 칠포성(七砲城)이라 불렀던 곳이다. 옻 칠자를 쓰서 칠포(漆浦)라고도 했던 뜻은 칠포 절골에 옻나무가 많아서, 혹은 해안의 바위와 바다색이 옻칠을 한 듯 검은 데서 유래한다고도 한다.

1914년 북하면 지역의 강서와 강북 두 마을을 합해 칠포(七浦)로 개명한 것이 지금까지 부르고 있는 이름이다. 칠포해수욕장에서는 해마다 재즈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재즈의 매혹적인 리듬 속에서 또 한 시대의 뜨거운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칠포바다시청 앞. 해파랑길 17코스 종착점이자 18코스 시작점을 알리는 스탬프 찍는 곳이다. 한 구간을 넘어서는 발길이 가볍다. 나무다리를 건너 기암절벽에 데크길이다. 구불구불한 오솔길 아래로는 검푸른 바다. 시원한 해풍을 타고 솔향기가 옷깃을 파고든다. 데크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동해 바다, 하늘이 더없이 넓고 푸르다.
녹색연안길로 넘어가는 언덕에서
연안녹색길에서 만난 부엉이 모양의 바윗돌
다시 한 고개를 넘어서니 칠포간이해수욕장이다. 아직은 해수욕장으로 지정되지 않은 곳이지만 조용해서 텐트 치고 놀기에는 괜찮은 장소로 보인다. 흑백사진처럼 작은 포구에 강태공 한둘이 눈에 들어오고 20번 지방도로로 올라선다. 다리 건너에는 칠포리에서 오도리로 잇는 동해안 연안녹색길(해파랑길 18구간) 입간판이 기다리고 있다.

바닷가 언덕 위, 언뜻 보면 신전 기둥을 떠올리게 하는 아치형 하얀 구조물이 눈길을 끈다. 어느 신전의 건축 양식을 흉내 낸 것일까. 기대에 부풀어 올라가보니 누가 허물다만 건물의 기둥이다. 잠시 부풀어 올랐던 마음에 웃음이 난다. 여행은 역시 마음을 한없이 순하게 해주는 묘약 같은 것일까. 폐가의 아름다운 기둥에 다가선다. 배경으로 삼아 작품 사진이라도 남기고 싶은 것이다.

또 한 굽이 돌아서자 귀여운 부엉이 모양을 한 바위가 바닷가에 앉아 길목을 지키고 있다. 여기는 과거 군사보호구역으로 해안경비 이동로로 사용되던 곳이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옛 모습 그대로를 살렸다 한다. 동해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트레킹로드로 재탄생했다. 칠포리와 오도리 두 마을을 잇는 상생의 길이기도 하다.
오도리에서 바라본 오도섬
오도리로 넘어가는 바다 데크길
데크길을 올라서자 해오름전망대다. 해오름은 포항, 울산, 경주 3개 도시가 함께하는 동맹의 이름이다. 이 3개의 도시는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지역이다. 산업화를 일으킨 산업의 해오름지역이라는 뜻과 경제 재도약의 해오름이 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뒤돌아본 전망대의 모습이 범선 모양을 하고선 금방이라도 동해의 푸른 물살을 가를 것 같다.

해안 절벽을 발아래 두고 도는 길이 한적하다. 정교한 데크길과 푹신한 부직포를 깐 길, 흙길
이순화.jpg
▲ 글·사진 이순화 시인
에 이어 묵정밭머리 대숲 사이로 오도리 방향 이정표가 보인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자 오도리로 이어주는 다리다. 까마귀가 날아오른다는 데서 유래한 오도리. 금빛백사장과 오도(烏島)섬을 앞에 두고 횟집, 카페, 펜션 등의 상가들이 빙 둘러 앉았다.

금모래오도해수욕장을 가로질러 DMZ 펜션을 올려다보며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철조망 둘러친 DMZ 높은 담장을 끼고 돌아나가자, 20번 지방도로다. 저 앞에 이번 여행의 종착점 오도교가 보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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