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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며칠 전에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습니다.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영광의 주인공입니다. 1982년 ‘창백한 언덕 풍경’으로 데뷔한 가즈오 이시구로는 1989년 발표한 세 번째 소설 ‘남아있는 나날’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현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합니다. 2005년에는 자신의 또 다른 대표작 ‘나를 보내지 마’에서 복제인간의 사랑과 슬픈 운명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은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 100대 영문 소설 및 2005년 최고의 소설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남아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 마’는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이상 인터넷검색 자료).

소설은 역사와 신화의 각축장(角逐場)입니다. 역사와 신화는 소설을 탄생시킨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인간 욕망의 원형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소설은 영락없는 사이비 신화입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 나타난 사회문화적 맥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소설은 갈데없는 의사(疑似) 역사일 뿐입니다. 그렇게 한 공간 속에서 역사와 신화가 공존하는 게 소설입니다. 작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훌륭한 작가는 그 두 개의 다른 핏줄이 자신의 몸(문학) 안에서 원활하게 서로를 도우며 기능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아마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도 그러한 융합적 삶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문학인’이지 싶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가 작품 ‘나를 보내지 마’에서 복제인간을 등장시켜 새로운 방식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가짜는 진짜를 되돌아보게 한다’라는 소설의 신화적 핏줄(전통적인 이야기 패턴)을 활용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 이야기 ‘옹고집전’과도 같은 핏줄입니다. 옹진 고을에 사는 옹고집은 심술 사납고 인색하며 불효한 인간인지라 도술이 능통한 도사가 초인(草人)으로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 그와 진가(眞假)를 다투게 하지요. 진짜와 가짜를 가리고자 관가에 송사까지 하였으나 진짜 옹고집이 도리어 져서 집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가짜로 몰려 걸식 끝에 비관 자살하려고까지 합니다. 그때 그를 구출해줍니다. 죽음에 이르러 비로소 옹고집은 크게 참회합니다. 복제인간은 결국 인간의 죽음을 뜻합니다.

몇 년 전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도 그 핏줄을 잘 응용한 작품이었습니다. 왕에게 변고가 있어 왕과 닮은 광대를 임시로 세워 가짜 왕 노릇을 하게 하는데 그가 오히려 진짜 왕보다 더 왕 같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영화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은 오직 ‘가짜는 진짜를 되돌아보게 한다’라는 오래된 경험칙을 내세우기 위한 최소한의 배경적 조건으로만 사용됩니다. 전형적인 로만스지요. 신화비평가 노드럽 프라이는 이른바 ‘신화적 핏줄’이 승한 이야기들을 로만스(romance)라고 부릅니다. 그에 따르면 ‘옹고집전’이나 ‘나를 보내지 마’나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다 같은 로만스입니다. 그는 로만스부터 비로소 인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주장합니다. 그 전 단계는 종류(kind)가 다른 ‘신들의 이야기’지만, 로만스 이하는 그저 정도(degree)의 차이에 불과한 ‘인간의 이야기’라는 거지요. 비극(서사시), 희극(리얼리즘), 풍자(초현실주의)와 같은 것들은 아무리 날고 겨도 그저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인간들의 이야기인 한, 사이비 역사와 사이비 신화의 합작품이라는 뜻입니다. 갑자기 드는 생각입니다만, 1년에 한 번씩 노벨문학상으로 온 세상이 들썩거리는 현상이 참 재미있습니다. 그것 역시 갈데없는 ‘신화적 핏줄’ 아닌가요? 그 행사 자체가 이미 로만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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