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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을 걷다] 14. 오도리 간이해수욕장~화진해수욕장

가을빛 한껏 물든 들녘과 해변···겸재 정선도 반한 절경

임수진 소설가   |   등록일 2017.10.2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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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제 선생이 머물며 그림을 그렸다는 조경대
여름과 가을의 경계, 바다는 풍파 없는 삶처럼 잔잔하고 햇볕은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따스하다. 들판의 벼는 노랗게 익었고 나뭇잎은 가을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바다와 함께 항상 흥한다는 의미인 흥해에서 처음으로 만난 건 오도리 간이해수욕장이다. 텅 비어 있을 줄 알았던 바다엔 여름의 꽁무니를 붙잡고 싶은 사람들이 모래사장에 햇볕처럼 모여 있고 동화 속 캐릭터들이 뛰어나와 신나게 춤출 것 같은 고래 카페 앞에는 나들이 온 가족이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오도리 간이 해변
오도리 간이해변의 고래 카페
이곳 해변은 전망 좋고 깔끔한 펜션이 많아 취향에 맞는 집을 골라 묵을 수 있어 좋다. 피서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라 호젓한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겐 이맘때가 더없이 좋을지 모른다. 해안로 1732번 길을 따라 걸었다. 왼쪽에 미르 펜션이 보이고 맞은편에 로마 원형경기장인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건물이 보인다. 입구에 ‘인 스튜디오’라 되어 있다. 주변이 억새와 코스모스 천지라 가을 속에 풍덩 빠진 기분이다. 건물 외벽을 타고 오른 담쟁이가 풍성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호기심에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독특한 외형만큼이나 실내 디자인도 이채롭다. 특별한 날, 차별화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면 발품을 팔아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오도리 간이 해변& 여름의 꽁무니를 붙잡고 싶은 사람들
사방공원 기념비
사방 공원길로 들어선다. 이곳은 다른 지역에 비해 비가 적게 내리고 바람은 많고 건조하여 오랫동안 민둥산으로 방치되어 있었던 곳이다. 척박한 땅이 녹색 나무와 푸른 공간으로 변한 건 1973년부터 4년여 간 진행된 사방사업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각종 수종 2,400만 그루가 심어졌고 지금은 푸른 바다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이를 데려와도 보여줄 게 꽤 많고 전시관을 둘러보며 지난 시간을 반추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싶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사방시설물을 구경하다 보면 흑백사진 같은 추억 하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의 연인바위
청진리에 닿은 건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다. 식당을 물색하다 ‘바다 이야기’로 들어갔다. 바다 이야기니만큼 특별한 게 있을 것 같아서다. 상큼하고 매콤한 전복 비빔밥을 먹은 후 연인 바위에 잠시 들렀다. 한 뼘의 틈도 허락하고 싶지 않다는 듯 맞댄 얼굴. 설화에 따르면 선사시대 때 이곳은 다른 부족과의 전쟁이 잦았다. 아버지인 부족장이 싸움에 패하자 그의 딸 해수기는 피신을 하게 된다. 하지만 도중에 추격군이 쏜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는다. 마을 청년 무돌이 해수기를 구한 뒤 100여 일 동안 저항하지만 끝내 죽음을 맞는다. 사랑을 꽃피우지 못하고 안타깝게 죽어서일까. 두 사람은 바위가 되어 서로를 애틋이 지키고 있다.
이가리 해변 가는 길
이가리 해변
사랑의 에너지는 참 강한 것 같다. 사랑에 빠지면 통증도 완화시켜 준다니 이보다 강력한 진통제가 또 있을까. 사랑의 위대함을 생각하는 사이 이가리 해변에 도착했다. 이가리는 옛날 도 씨와 김 씨 두 가문이 길을 사이에 두고 각각 집성촌을 이루었는데 번성하면서 합하여 한 마을이 되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겸재 선생이 머물며 그림을 그렸다는 조경대
겸재 선생이 머물며 그림을 그렸다는 조경대
해안선 따라 크기와 생김새가 각기 다른 바위가 제멋대로 생겨난 조경대에 이르렀다. 조선조 화단의 대표 화가 중 한 분인 겸재 정선이 청하현감으로 2년간 이 지역에 머무를 때 주변 풍광에 빠져 자주 그림을 그린 곳이다. 이 자리에 서보니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화가나 시인이 아니더라도 진기한 돌을 쏟아부은 듯한 해안에 마음을 뺏기지 않을 수 없겠다.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아도 자연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신비하다. 크기와 형태, 파도에 깎인 모서리가 인고의 시간을 말해준다. 입이 없어 자신에 대해 구술할 수 없지만 새겨지고 깎인 모양이 시간이고 역사이다. 그중 유독 돋보이는 바위 하나가 있다. 곰 같기도 공룡 같기도 한 그놈은 제 어깨 위에 생명을 키우고 있다. 마음 씀씀이가 한량이다. 바위도 바위지만 단단한 곳에 뿌리를 내려 푸른 숨을 쉬고 있는 소나무의 의지도 대단하다.
포스코 수련원 앞 송림
바다와 민물이 하나가 되는
포스코 수련원 앞 송림을 잠시 감상한 뒤 용두마을에 도착했다. 바다와 민물이 교차하는 다리 위에 잠시 머물며 물이 흘러가는 곳을 바라본다. 바다로 가는 길은 모래가 깊이 패여 계곡 같다. 월포 해변에 도착했을 땐 햇볕이 더욱 순해졌지만 여름의 꼬리는 아직 뜨거움을 잃지 않았다. 이곳은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곳이라 동물성 플랑크톤이 많아 꽁치와 놀래미가 많이 잡힌다. 그래서일까. 낚시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이 오도리에서부터 쭉 이어졌다.
세월을 낚는 강태공
월포해변
역동적으로 날갯짓하는 테트라포드 위 갈매기
이어 월포다리다. 이 다리를 건너면 청하면 방어리다. 고요한 마을을 갈매기가 지키고 있다. 마을 앞 해안 테트라포드는 갈매기의 쉼터다. 다정히 앉아 끼룩대다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날갯짓하는 모습이 역동적이다. 방어리 들녘의 풍요도 빼놓을 수 없다. 억새와 코스모스는 몸을 흔들어 바람을 일으키고 노랗게 익은 벼는 가을을 아주 가까이에 부려놓고 있다. 방어리에서 조사리 가는 길 농로 사이 샛길에도 빨갛고 하얀 가을이 잔뜩 피었다. 특히 청양 수산 앞에서 바라본 농로는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신비하기까지 하다.
길의 끝으로
능선에서 바라본 황금들판
정해진 길과 연관이 없더라도 한 번쯤 걸어보고 싶은 길은 있기 마련이다. 눈앞의 농로가 그랬다. 길의 끝에 닿아보고 싶었다. 아무런 표식이 없기에 조금의 모험이 필요했다. 접어지지 않는 호기심을 안고 농로로 들어섰다. 황금빛 벌판엔 사람은 없고 가을만 있다. 이럴 땐 꼭 프로이트의 ‘가지 않는 길’이 생각난다.

숨이 약간 좀 찰 무렵 정상에 도착했다. 높이는 마을 앞산 수준인데 눈앞이 환해지면서 조사리와 방어리 들녘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마을과 바다와 도로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어 머릿속이 시원하다. 언덕 위 관제탑은 텅 비었고 활자로 된 게 아무것도 없어 예전에 헬기 관제탑으로 사용되었던 곳이 아닌가, 추정해 본다.
조사리 방파제
다시 7번 국도를 걸어 조사리 어촌 마을을 지난다. 이번 코스의 매력은 작은 해변이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을 지명(地名) 또한 매력 있다. 오도리, 이가리, 용두리, 방어리, 조사리. 방석리. 그 유래를 찾아 쓰고 싶을 정도로 정겹다. 조사교 아래 개천은 키 낮은 코스모스와 녹색 풀이 어우러져 풍경화를 보는 것 같고 방석교 지나서 만난 들녘은 평화로웠다. 그 들녘의 끝에서 우회전을 하면 500미터 앞에 6인의 해병 순직비가 있고 아라 하우스 펜션을 지나면 화진리다.
화진해변 가는 소나무숲길
화진 해변 여름을 보내기 아쉬운 아이들
잔디 펜션이 보이면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들자. 곧바로 소나무 숲길로 이어진다. 길쭉길쭉한 소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높게 뻗어 있어 인간 세상에서 신의 세계로 건너온 듯하다. 문명에서 멀어진 것도 잠시 또다시 인간 세상으로 내려서면 오늘 코스의 마지막인 화진 해변. 18코스의 종착지이자 포항 구간의 끝이다. 여름 내 조개잡이, 불꽃놀이, 해변 가요제 등 다채로운 축제로 시끌벅적했던 백사장은 나른한 모습으로 길게 누워 있다. 그 위에서 늦여름으로 장난을 치고 있는 아이들 모습이 천진해서 더욱 예쁘다.

□여행자를 위한 팁
글 임수진 소설가



△사방기념공원

대중교통: 500번 버스 칠포, 오도방면 승차 후 오도 하차 도보 5분 거리

자동차 이용 : 영덕, 울진방면 7번 국도를 이용하여 칠포삼거리에서 우회전, 칠포해수욕장에서 좌회전 월포해수욕장 방면으로 2km지점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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