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급하게 회전한 무엇과 닮았다 그것은 방충망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잎 진 버즘나무를 바라보는 겨울의 시선과 닮았고 붉은 샤워 가운을 걸친 채 팬티스타킹을 잡아당기는 여자의 입술과도 닮았고 그것은 망설이는 볼펜 끝과도 닮았다……………………나는 지금 전이 중이다……실패가 눈앞에 있다……누런 해를 다시 만날 것이다……………………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다





감상) 나는 아직 물들지 않은 은행나무 아래 서서 가을을 맞는다. 엄마가 끝내 버티지 못하고 떠난 가을을 맞는다. 어느 새 엄마의 나이가 된 내가 엄마의 눈으로 가을을 본다. 저승에서 굽어보는 이승의 가을을 본다. 추억은 흑백으로 새파랗고 은행나무 잎마다 매달린 것은 알 수도 없는 남은 생이다. 나는 날마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기다리는데 엄마도 그랬는지는 모르겠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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