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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한 수필가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겠지만, 엄마 품에서 태어나 아기 시절에는 나에 대한 기억이 없다. 생각이 안 난다. 옛날에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기억은 드문드문 난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지만 서너 살 때 일제 강점기에 지은 일본식 다다미방에서 가제처럼 뒤로 기어간다고 모두 웃었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어 뒤로 기어간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7살 때는 나하고 두 살 차, 세 살 차 나는 연년생인 동생 형제가 나를 믿고 덜컹거리는 소달구지 뒤따라 우시장에 갔다가 집에 오는 길을 잃어 동네를 서너 바퀴 돌아도 집을 못 찾아 셋이 맨홀 뚜껑에 앉아 울고 있는데 한나절 동안 우리를 찾아 헤매던 엄마를 만나 호되게 혼난 기억은 또렷이 나서 평생 기억한다.

근대화 시절에 자라온 고향 상주는 전형적인 농촌 분지로 집도 비슷비슷하고 골목도 많아 골목 안 막다른 집 찾아가기는 눈썰미가 있고 길눈이 밝아야 찾아간다. 우시장이 있는 성동은 팔백세대가 넘고 어린애만 해도 한집에 7, 8남매로 인구가 만 명에 가까워 상주읍 성동면이라는 애칭이 부를 정도로 큰 동네였다. 담 하나 건너면 집인데 길 따라 뱅글뱅글 돌다 보니 갔던 길로 또 가고 해서 황당한 일을 겪고는 재탕은 안 했다.

초등학교 다니면서 공부도 하고 친구도 생기며 만화방도 들락거리며 골목에서 장대 싸움도 많이 했다. 머리가 커지며 세상 물정을 알게 되니 ‘나’라는 존재에 관심이 생긴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내가 왜 태어났는가? 인생은 왜 살아야 하는가? 온갖 세상사에 관심을 가지고 고민도 하고 헤매기도 하고 망상도 많이 했다.

물론 내가 원해서 내가 선택에서 이 세상에 온 것은 아니다. 자연의 순리와 우주의 섭리에 따라 떠밀려 내가 온 것이 아닌가? 갈 때도 마찬가지다. 오고가고를 모르니까 바람에 밀려 정처 없이 흐르는 구름 따라 내가 멋모르고 이제까지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하루를 사나 백세시대 한평생을 사나 지나 보면 똑같다. 실 큰 먹자니 배가 차서 안 들어가고 피땀으로 모은 재물도 못 가져가니 인생의 종말은 허무하다 눈뜨면 살아있고, 눈감으면 이승이냐 저승이냐 잠깐이냐? 오래냐? 죽어 있다는 것이다. 숨을 쉬면 일시적이고 숨을 안 쉬면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차이뿐이다. 언젠가는 다 하늘나라에 가기 때문이다.

일생의 축소판인 하루가 저물고 잠자리에 눈 감기 전 드는 생각이 있다. 귀한 하루가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시간이 촌음’이듯이 아깝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행여나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지? 어제 죽은 자가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오늘’ 살아 있는 자가 무미건조하게 보내고 있는지? 또 반복되는 후회를 답습하는 것은 아닌지 사후의 걱정까지 당겨서 하게 된다.

내일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오늘 새로 태어나는 기분으로 알뜰살뜰 살아가자 눈뜨고 왔다가 눈감고 가는 백 세 인생이나 아침에 눈 뜨고 저녁에 눈감는 일과나 진배없다. 첨단시설에 묻히고 자동차에 갇혀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사!. ‘눈뜨면 출생, 눈감으면 사망’이니 막지도 잡지도 못하는 바람 같은 시간 오래 붙들며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 장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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