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이 파릇파릇 봄을 끼운다
가지마다
단단한 집게클립으로

강을 건너는 누의 클립은 악어의 아가리
종유석과 석순도 석회동굴이 클립이다

봄바람과 스카프가
맞물린다 정오와 식곤증과 커피가, 마트와 카트와 카드가
맥주와 치킨과 퇴근이
빌딩은 빌딩끼리, 골목은 골목을 물고 버틴다

몸에서 멀리 뻗어나간 각각의 발가락도 하나로 꽂혀있다

하늘이 새 떼를 감싸는 것도
헤어롤이 머리를 휘감는 것도 클립의 방식

옛 애인과 과거를 정리하지 못한
어지러운 연애들

클립에 끼우지 못한 결혼은 쉽게 깨진다



감상) 진눈깨비 날리는 아침과 구름 걷히기 시작하는 산꼭대기와 낯선 바람 몰아치는 골짜기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저 먼 공중의 찬바람과 서울로 간다던 그의 소식과 아무런 안부도 전하지 못한 채 대구로 가는 나의 오전이 가지런히 혹은 두툼하게 끼어 휘날리는….(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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