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황당한 이야깁니다. 누구 한 사람의 생사가 한 나라의 존망을 좌우한다는 것은 망상입니다. 역사는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 아래로 수많은 인과(因果)의 뿌리들이 깊고 넓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잔뿌리 하나를 자른다고 거목이 죽어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라는 말이 더 실감이 납니다.
제가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런 역사적 사실이 지닌 의미나 가치에 대한 것입니다. 이를테면, 만약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자기 한 몸을 죽이지 않았다면 우리 민족은 얼마나 하찮은 존재가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통째로 이웃 나라에 먹히는 상황인데 누구 하나 나서서 멸사봉공, 한 몸을 희생하는 자가 없다면 그런 민족은 자립, 자결할 자격이 애당초 없는 것입니다. 일찍이 이순신 장군이 보여준 그 일편단심을 어떤 식으로든 계승해야 했는데 안 의사가 그걸 제때 보여준 것입니다. 자기 한 몸을 죽여 우리 민족 전체를 살린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을 떠나서 그 하나의 의미만으로도 안 의사의 이토 처단은 만고에 빛나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안 의사의 총탄을 맞고 비명횡사한 이토 히로부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분하고 억울했을까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내용을 보면 그런 유추가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격 당일 오전 10시경 열차로 옮겨진 이토는 죽기 직전 “범인은 조선인인가?”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그렇다고 대답하자 “바보로군” 이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물론 총을 세 발이나 맞고 그런 말을 남길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동행한 의사의 증언으로는 이토가 열차 내로 옮겨질 때까지 의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범인은 조선인인가?”라고 물었다는 것은 그 자신 평소에 언젠가 조선인에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역시 목숨을 걸고 이웃 나라를 훔칠 작정을 했던 범상치 않은 자였던 것입니다. 조정이 비록 힘을 잃고 한갓 먹잇감으로 전락해 있지만, 조선인은 결코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이토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 놈은 죽여야 무사가 된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아마 일본의 한 소설책에서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말을 ‘내 안의 (못된) 한 놈을 죽여야 내가 산다’로 확장해서 받아들였습니다. 요즘 자기 한 몸을 헛되이 버리는 사람들의 기사를 접할 때마다 ‘한 몸 죽어야 하는 자’들은 따로 있는데 주변의 애꿎은 목숨만 죽어 나가는 건 아닌지 안타까운 느낌이 듭니다. 하찮은 것들이 나라를 다스려 백성들에게 큰 고통을 주었던 구한말(舊韓末)도 생각이 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