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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98. 영양 경정(敬亭)

은일의 삶 즐기던 주인은 간데없고 선경만 덩그라니

김동완 여행작가   |   등록일 2017.12.2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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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3대민간 정원으로 꼽히는 경정과 서석지. 왼쪽건물이 경정이고 오른쪽 건물이주일재, 언못이 서석지다.
겸재 정선이 그린 쌍계입암(雙溪立巖)은 경북 영양군 입암면 선바위의 진경을 그린 그림이다. 일월산이 반변천과 청기천을 가르며 뻗어 나오다 돌연 치솟아 오르며 멈추서서 아찔한 절벽을 만들어냈으니 자줏빛 비단 병풍, 자금병(紫錦屛)이다. 자금병 아래서 반변천과 청기천 두 물길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남이포다. 남이포 앞에 있는 정자가 남이정이다. 입암(선바위)은 자금병과 남이포,남이정이 한눈에 들어오는 부용봉에 우뚝 서 있는 바위이다. 보기에 따라 벌떡 일어선 곰 형상 같기도 하다. 정선은 청하현감으로 포항에 내려와 있을 당시인 1734년 이 그림을 그렸다.

자금병과 남이포경정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석문에 있다. 석문은 정영방의 호이기도 하다.
선바위와 남이포에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남이는 세조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신이다. 용의 아들이라고 하는 아룡과 자룡 형제가 역모를 일으키자 이곳에서 평정했다. 남이는 이곳이 역모를 꾀할 무리가 생겨날 지형이라고 보고 칼을 내리쳐 산맥을 잘랐는데 이때 생겨난 바위가 선바위라고 한다. 그는 병조판서에 오르며 승승장구했으나 예종 즉위와 함께 유자광의 모함에 빠져 억울하게 죽었다.자금병과 부용병 사이를 석문(石門)이라고 하는데 석문은 경정의 주인 정영방(鄭榮邦1577년~1650)의 호이기도 하고 서석지로 들어가는 입구이기도 하다. 서석지가 집안에 들인 정원, 내원이라면 자금병과 부용병, 남이포와 입암은 바깥정원, 외원이다. 쌍계입암이라고 불렀던 정선과는 달리 영양현읍지는 이곳을 ‘석문입암’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경정편액. ‘경’은 자중하고 경계하는 몸가짐을 뜻한다.
석문을 지나 청기천을 거슬러 약 2km 정도 가면 동래정씨 집성촌인 연당마을이 나온다. 태고당 고택등 고택이 올망졸망 모여 있다. 경정은 연당마을 입구에 있다. 400백 된 은행나무가 마을을 압도한다. 경정은 전남 담양의 소쇄원(瀟灑園 해남 보길도의 세연정(洗然亭)과 함께 조선의 3대 민가정원으로 꼽힌다. 중심건물인 경정이 가운데 자리 잡고 동쪽으로 주일재(主一齋), 두 건물 앞에 서석지(瑞石池)를 조성했다. 경정과 주일재 현판이름은 주자의 《근사록》 ‘거경궁리 주일무적(居敬窮理 主一無適,)’에서 따왔다. 매월당 김시습은 《매월당집》에서 “학문의 크고 작음은 본래 같지 않으나 ‘경’이라는 글자는 시종일관 하는 것이다. 선현이 이르기를 ‘정신을 하나로 하여 다른 데로 감이 없다’하고 또 이르기를 ‘항상 깨어 있는 법을 쓴다고 하니, 마음을 한 곳에 붙들어 두고서 다른 생각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풀었다.

주일재는 부속 서재다. 마루에 노을이 깃들어 서하헌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서석지의 ‘서석’은 연못 안에 있는 상서러운 돌에서 영감을 얻어 지은 이름이다. 서석지의 자연석은 물에 잠긴 것이 60개, 물 밖에 드러난 것이 30개나 된다. 정영방은 돌에다 하나 하나 이름을 붙였다. 이름이 붙여진 돌이 무려 19개나 된다. 연못에는 조선선비의 이상으로 가득하다. 돌의 이름만 뜯어봐도 이야기 사전이다. ‘난가암’은 ‘왕질난가’를 뜻한다. 중국 진나라의 왕질이라는 사람이 산에서 나무를 하러 갔다가 그만 동자들이 바둑을 두는 걸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정신 차려 돌아오려는데 도끼자루 썩었다. 집에 와 보니 아는 사람들이 모두 죽고 없었다는 이야기다. ‘탁영반’은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는 굴원의 어부가에서, ‘관란석’은 ‘물을 보는데는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물결을 봐야 한다’는 맹자에서 취했다. 이렇게 이름을 붙이고는 ‘경정잡영(敬亭雜詠)’ 32수를 써 시로 남겼다.

사우단. 연못 가운데 석축을 쌓고 선비의 네친구, 소나무 대나무 매화 국화를 심었다.
서석지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사우단(四友壇)이다. 방형의 연못 한쪽에 석축을 쌓아 놓고 대나무와 소나무 국화 매화를 심어 고독한 선비의 친구로 삼았다. 경정은 정영방이 36세가 되던 해, 1613년에 지었다. 4칸 대청과 좌우에 두 칸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 구조다. 마루에는 분합문을, 방에는 들어열개문을 달아 여름이면 방안에서도 아름다운 정원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정자 안에는 석계 이시명의 ’증정석문경보‘ ’경영잡영‘ 약봉 서성의 ’증정석문경보‘ 정경세의 ’증정경보‘ 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


일이 있으면 돕기를 잊지 말고

심각한 일에 임해서는 더욱 싸워 이기며

깨닫고 깨달아 모름지기 밝히고 관통하여

중국 경정산 서암승 같이 되지는 말 일이다.

-정영방의 시 ‘경정’


정영방은 퇴계의 제자인 우복 정경세에게서 수학했다. 23살이 되던 해에 책 상자를 지고 정경세가 있는 우곡 산중으로 찾아가 제자가 됐다. 대학 중용 심경 등을 공부하며 이치를 깊이 깨달아 일가를 이뤘다. 공부에 전념하는 그에게 정경세는 “그대에게 시험삼아 묻노니 꽃과 버들 중 무엇이 더 푸른 것을 푸르게 하고 붉을 것을 붉게 하는가”라는 시를 지어줬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가벼움과 무거움, 앞선 것과 뒤 따르는 것, 출처에 경계가 있음을 가르쳤다. 정영방은 이황- 유성룡-정경세-정영방으로 이어지는 퇴계학파의 삼전(三傳)의 제자로 꼽힌다.

경정에서 바라본 서석지와 은행나무
29세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성균관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했다. 광해군의 실정을 보면서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겠다’며 은일의 삶을 택했다. 스승 정경세가 추천한 벼슬을 마다한 일화가 있다. 인조반정 이후에 정경세는 이조판서에 올랐다. 그는 제자 정영방을 조정에 천거했다. 스승의 제안을 정중히 제안한 정영방이 스승에게 선물 꾸러미를 보냈다. 스승이 풀어보니 게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정경세는 제자의 뜻을 알아채고 더 이상 벼슬을 권하지 않았다. 정영방이 스승에게 보낸 ‘게’는 어떤 의미일까? 당나라 시인 피일휴가 쓴 ‘게에 대해 읊다’에 열쇠가 있다. ‘푸른 바다에 다다르지 않아도 일찍이 그 이름 알려졌지/ 뼈대가 도리어 살점을 뚫고 튀어나왔다네/ 속이 없다고 우레와 번개 무서워한다 말하지 마라/ 바다의 용왕이 있는 곳에서도 옆걸음질 친다’ 싫으면 정승자리도 못하는 법이다. 그는 은일의 삶속에서 유가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다.

서석지는 선비의 이상으로 가득하다. 90개의 기이한 돌 들 중에 이름이 붙여진 돌이 19개에 이른다.
정영방은 경정에서 약봉(藥峯) 서성(徐? 1558~1631)과 깊은 교류를 가졌다. 율곡 이이의 수제자였던 서성은 1616년 인목대비 폐비 사건에 대해 직언하다 부용봉 아래에 귀양을 와서 집승정을 짓고 7년동안 살았다. 그는 서석지를 이렇게 노래했다.


깊은 산의 내면까지는 알수 없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계곡과 산이 있네

홍진 세상과 헤어짐은 스스로 원했지만

조물주는 한쪽만 위해 만들었네

산봉우리는 둥글어 상투같고

흐르는 물은 굽이쳐 만을 이루었네

정공이 자리잡아 손님을 맞이 하는 땅

잇따라 오는 비로 오래 머무르다 돌아가네

- 약봉 서성의 시 ‘서석지’


정영방은 석계 이시명과도 교유가 깊었다.이시명은 1612년(광해군 4)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강릉 참봉(康陵參奉)을 제수받았다.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에 석계초당(石溪草堂)을 세웠다.
글·사진 김동완 여행작가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의 남편이다. 그가 쓴 ‘봉기석문지당병서(奉奇石門池堂幷序)‘는 당시의 서석지와 경정의 풍광과 정영방의 생활의 일부를 잘 드러내고 있다. “못 가운데 겹겹이 뒤섞여 늘어선 돌들은 짐승이 엎드리고 용이 서린 것 같은데, 큰 것은 여러 사람이 앉을 정도고, 작은 것은 오히려 나란히 걸터앉을 수 있다. (중략) 못의 서쪽에 작은 집을 만들어 도서와 바둑판, 거문고, 술단지와 책상과 지팡이를 두고는 우리 어른께서 아침저녁으로 굽어보시며 즐거워하신다. 그 북쪽에다 또 몇 칸의 초가집을 짓고 어른과 아이들이 거처하며 책을 보게 하셨다. 못에 새로 연꽃을 심어 활짝 피었고 물고기도 몇 마리 길렀다. 못 주변에는 넉넉하게 깨끗한 모래를 뿌리고 잔디를 두터이 심어 깔고 앉을 수 있게 하였다. 구기자, 국화, 복숭아나무, 버드나무와 많은 소나무를 곳곳에 심어서 못을 보다가 그 안에 들어가면 놀라서 우러러보며, 그것이 저절로 그리된 것인지 인위적인 것인지 분별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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