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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과 폐족

경북일보   |   등록일 2018.02.0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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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金笠)’이 별명인 김병연이 20살 때였다. 영월읍 내 동헌에서 열린 백일장에 김병연도 참여했다. 시제(詩題)는 홍경래 난 때 ‘용감히 싸우다가 순절한 가산군수 정시의 충절을 찬양하고 비겁하게 항복한 김익순을 규탄하라’였다. 김익순이 누군지 모르는 김병연은 ‘한번 죽어서는 그 벌이 가벼우며 만 번 죽어 마땅하다(一死猶輕萬死宜)’라는 시로 장원했다.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김병연은 어머니로부터 청천벽력같은 말을 들었다.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라는 것과 가족사의 비밀이었다. 그의 조부 김익순이 선천 부사로 있을 때 서북사람을 등용하지 않는 조정의 지역차별정책에 불만을 품은 홍경래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 가산군수 정시는 죽음으로 맞선 데 반해 김익순은 반군에 투항, 목숨을 구걸한 것이다. 난이 평정되자 김익순은 투항죄로 처형되고 그 일가는 ‘폐족(廢族)’을 당했다. 폐족은 조상의 죗값으로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가문이다.

김익순의 손자임을 안 김병연은 조상을 욕보인 죄의식과 폐족의 한을 안고 53세로 객사할 때까지 삿갓을 쓰고 전국을 방랑했다. “이제 너희들은 망한 집안의 자손이다. 폐족은 오직 벼슬길에만 거리낌이 있을 뿐 성인(聖人)이 되고 문장가가 되고 선비가 되기에는 아무 거리낌이 없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다. 정조가 죽은 후 노론이 권력을 잡자 남인이자 천주교도였던 정약용 가문이 몰락, 폐족 신세가 됐다. 정약용의 유배는 18년 이나 이어졌고, 결국 조정에 다시 나갈 기회를 얻지 못했다.

‘폐족’이란 용어가 우리 정치에 다시 등장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왼팔로 노 대통령의 복심이었던 안희정씨(현 충남도지사)가 대선패배와 관련 “친노라 표현돼 온 우리는 죄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폐족”이라고 한 자탄이 계기가 됐다. 친박계 좌장 자유한국당 최경환의원이 구속되자 친박계가 사실상 폐족의 길로 들어섰다는 분석이다. 폐족 속도를 늦추려고 용 써봐야 헛수고일 뿐이다. 뒤편으로 물러서서 대통령까지 만들어 낸 친노의 재활을 두고두고 반추해야 하는 것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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