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제자도, 옛 제자의 전 남편도, 자기 부인도
,강의노트도, 단풍잎도, 외상전표도, 억새풀도,
모두 희미한 그림자로 떠다닐 뿐.

플라톤의 동굴, 장자의 연못, 니체의 심연, 베토벤의 B플랫……
나는 암흑과 아름다움의 관계에 대해 그에게 묻지 않는다.


A는 A가 아니로다.
A는 A가 아니로다.
A는 A가…


…내가 속으로 되뇌는 동안
그는 내게 자신만의 말년의 양식을
은퇴 이후 혹은 사별 이후
머리 위에 떠 있는 거대한 바위를
공들여 깎고 다듬는 장인의 풍모를 선보인다.





감상)어느 날 나는 기억에도 없는 문 앞에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 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부르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내가 죽어서 다른 세계에 왔다면 이런 느낌일 거라는.(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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