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무엇보다 특정집단 내에서뿐 아니라 각계 전반에 걸쳐 이 같은 추잡한 범죄사실이 만연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조직문화를 다시금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다. ‘권위에 대한 복종’을 강요해 온 그동안 우리 사회의 후진적 조직문화가 성폭력이라는 섬뜩한 범죄행위를 묵인 내지는 방조하게 만든 것이 아닌지 깊은 성찰이 필요할 때다. 불의인 줄 알면서도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감내할 자신이 없어 애써 외면하고 오히려 동조까지 할 수밖에 없는 조직 내 처세술(?)을 탓하기에 앞서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만든 그 힘, 즉 ‘권위’에 대한 태도 반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불행히도 지금 우리 사회 분위기는 그 정도까진 나아가지 못한 것 같다.
성폭력 피해 사실에 대한 일부 언론의 선정적 보도행태나 피해자들에 대한 신상털기식 댓글 수준은 문제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한 방송인의 ‘미투 공작’ 발언으로 야기된 정치권의 논란은 더욱 그렇다. 비록 ‘미투 운동’이 애먼 사람 잡는데 악용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한 발언이라고 해명했지만 그의 발언은 여러모로 부적절한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자칫 용기 있는 사실 폭로가 정치적 음모론의 수단 내지는 무고이지는 않을까 하는 괜한 선입견을 심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문제가 있다. 가뜩이나 근거 없는 의구심으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제2차 피해가 공공연한 가운데 뜬금없는 공작 가능성을 제기한다는 것은 백번 양보해도 선의(?)로서 해석하기에는 무리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동안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추한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한편에서는 부패한 정치권력의 민낯이, 그리고 또 다른 쪽에서는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집단문화가 만들어 낸 추잡한 성범죄의 실상이 하루가 멀다고 낱낱이 밝혀지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계기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냉철함이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에게 요구된다. 상대적 지위를 이용해 저지른 온갖 비리와 부도덕한 행위들이 더 이상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정치적 이념과 진영의 논리가 본질을 흐리게 그냥 두어서도 안 된다.
늘 그랬듯이 세상의 변화는 작은 사람들의 큰 용기 있는 행동에서 비롯되었다. 조직 내 성범죄 사실을 고발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 전반의 부정과 비리, 그리고 불합리한 행위들에 대해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응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