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지진 안전도시 조성에 문화를 입히자- (4) 리버풀, 우범지대에서 세계적 관광 명소로

비틀즈 동상
비틀즈의 영혼이 머무는 리버풀의 밤은 어디선가 귀에 익숙한 ‘렛 잇 비’ 비틀즈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 했다.

영국 서쪽 바다 아이리시해(海) 연안 머지강변의 리버풀 밤 거리는 화려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루한 옷을 입었다가 새로 산 옷을 입은 아이처럼 거리는 조금은 부자연스러웠다.

겨울비가 내리는 밤, 외투 깃을 한껏 올린 영국신사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이제 막 새 옷을 갈아입은 듯한 들뜬 분위기가 느껴졌다.

리버풀은 산업혁명을 거쳐오는 동안 노동자의 힘든 삶이 녹아 있는 항구도시이다.

리버풀은 17세기 해상무역으로 크게 성장했다. 18세기에는 카리브해 노예무역의 중심지로서 전 세계 해상무역의 40%가 리버풀을 통해 이뤄졌다. 리버풀은 산업혁명 중심지로도 역할하며 크게 번성했다. 1840년 리버풀에서 최초의 증기선이 출항했고, 신세계인 미국으로 떠나려는 유럽 이민자들이 리버풀로 밀려와 한때 시 인구가 100만명에 달했다. 타이타닉호가 건조된 곳과 처음 출항한 모항도 리버풀항이었다.

그런데 19세기 말부터 리버풀 경제는 침체의 길을 걸었다. 산업 구조가 변하며 도시 경제가 쇠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며 빈집이 늘었고 낡은 항구 주변은 우범 지대가 됐다. 리버풀은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 많은 문화 공간과 리버풀 교향악단 등 풍부한 문화자원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2000년대 초까지도 쇠락한 항구도시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하지만 리버풀엔 비틀즈가 있었다.

리버풀의 밤
노예무역의 중심지로 인류 산업혁명의 거점으로 근대를 관통해온 도시는 이제 비틀즈의 잔영만이 짙게 남아있었다. 그들의 노래는 아직도 매년 1500만 명을 이 도시로 불러들인다. 머지 강변에서 만난 너무도 익숙한 4명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말을 걸어 올 것 같았다.

세계적인 팝그룹 비틀즈의 고향으로 유명한 영국 리버풀이 매년 수천만명이 방문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관광 도시로 변모한 것이다.

라이브 클럽이 밀집한 리버풀 중심가 매튜 스트리트는 비틀즈의 숨결을 느끼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리버풀 박물관과 도서관, 공연장도 언제나 관광객들로 붐빈다. 도시 곳곳을 둘러봐도 불과 30년 전 리버풀이 가난과 실업을 대표하는 쇠락한 도시였다는 것을 느끼긴 어렵다. 지역사회의 참여를 바탕으로 음악·미술·공연·스포츠 등 다양한 문화 인프라를 구축해 문화 도시로 변신한 덕분이다.

리버풀은 유럽문화 수도로 선정된 이후 오랜 준비를 거쳐 2008년 다양한 공연과 이벤트가 포함된 대규모 문화예술 행사를 벌였다. 1만명 이상의 예술가가 행사에 참여했고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행사를 통해 발생한 경제적 효과는 약 8억파운드(약 1조2000억원)에 이른 것으로 추정됐다.

리버풀시는 문화 수도 프로젝트가 리버풀을 최고 수준의 문화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계기가 되도록 문화관광·국제협력·도시개발 등 관련 부서를 통합한 ‘리버풀 컬처 컴퍼니’를 설립해 운영했다. 리버풀시의 도시 재생 노력은 이벤트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정책 과제로도 이어졌다. 노력은 성공적이었다. 현재 리버풀은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예술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비틀즈 스토리
△비틀즈 신화

비틀즈가 출연한 영화 ‘HELP’의 삽입곡‘예스터데이(Yesterday)‘는 지금도 전 세계 인의 가슴에 메아리치고 있다.

영국인들은 “존(레논)은 비틀즈의 영혼이었고 조지(해리슨)는 비틀즈의 정신이었으며 폴(매카트니)은 비틀즈의 심장이었고 링고(스타)는 비틀즈의 드러머였다” 고 기억하고 있다. 그룹이 깨지고(1970년) 천상의 싱어 존 레논의 암살(1980년)로 4인조 비틀즈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노래는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1999년 타임지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피카소와 비틀즈를 선정하고 새로운 세기를 맞았다. .


비틀즈 스토리 전경
△비틀즈 스토리 박물관

흥미로운 인터랙티브 전시로 가득한 비틀즈 스토리는 리버풀 최고의 명소이다. 전 세계 여러 곳에 비틀즈 박물관이 있지만, 비틀즈의 고향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비틀즈 스토리 하나뿐이다. 리버풀 어디를 가든 이 곳 출신의 네 명의 소년이 세계 최고의 뮤지션이 된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다.

비틀즈 스토리는 비틀즈가 고향에 머물던 시기에 특히 집중한다. 리버풀은 비틀즈가 최초로 연주했던 클럽을 구경하고, 그룹 결성 초기 및 멤버들의 유년 시절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비틀즈의 열혈팬은 물론, 음악 팬들과 가족 단위 관람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비틀즈 스토리는 리버풀에 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 중 하나이다.

비틀즈 스토리
그룹 결성 초기에 비틀즈가 즐겨 선 무대인 케번 클럽이 실물과 똑같이 재현돼 있다. 비틀즈 스토리의 하이라이트인 사진 전시에서는 리버풀에서 활동하던 비틀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시된 비틀즈 수집품 중에는 한정판 레코드, 조지 해리슨의 기타, 존 레논의 동그란 안경도 있다. 오디오 가이드에서 흘러나오는 존 레논의 여동생 줄리아의 목소리가 관람을 도와준다.

알버트 독 문화 지구에 자리 잡고 있는 비틀즈 스토리는 크리스마스 당일과 다음 날을 제외하고 매일 개관한다.

케번 클럽 전경.
△캐번 클럽

리버풀의 자랑인 비틀즈가 수많은 공연으로 실력을 쌓았던 상징적인 캐번 클럽은 연중 내내 수많은 세계적인 그룹의 공연이 열리며, 그 벽면은 음악 관련 다양한 기념품으로 장식돼 있다.

1957년 개장한 이 클럽에서 비틀즈는 1961~1963년 사이에 292번이나 공연했다.

캐번 클럽’은 그렇게 세월을 거슬러 찬란한 과거를 지키고 있다. 존 레논의 귀여운 동상이 입구에 서 있고 옆으로 이어지는 벽에는 지구 상의 모든 언어로 휘갈긴 찬사 메모들로 가득하다. 말 그대로 동굴 같은 지하 펍(Pub)에서 반항적이었던 10대 소년 4명은 운명처럼 20세기 중반을 두드렸다. 로큰롤 역사를 다시 쓰게 했고 그 중심에 우뚝 섰다. 아무도 예견하지 못한 일이었다.

케번 클럽 공연
하룻밤 단돈 5파운드를 받고 무대에 선 소년들(1961년)은 2년 뒤 300파운드의 출연료를 받았다. 60배로 대우가 달라졌다. 런던과 미국진출로 3년 만에 연간 천 만 장씩의 노래집을 팔아 치웠다. 그룹 해체까지 8년 동안 만든 곡들은 12장의 디스크에 담겼고 5억 장이 나갔다. 수수께끼 같은 기록이다. 빌보드 차트 역사상 1위 곡 20개를 제조해낸 경우는 전무후무하다.

20세기의 가장 놀라운 ‘선물’ 비틀즈는 곧바로 21세기의 전설이 됐다. 어떤 찬사도 언어로 설명 되지 않는다. 이제 시대를 넘나드는 관객만이 남았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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