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은어 기다리는 모천···하얗게 메밀꽃 이는 바다
문을 들어서자 아름드리나무가 공원을 지붕처럼 덮고 있다. 붉은빛 감도는 수피를 입고 하늘 향해 곧게 뻗어나간 나무. 늠름한 기상에 숭고미마저 드는 이 나무는 울진이 자랑하는 금강송이다. 강과 바다가 만든 20여 만 평의 대지 위에 유전자 보호림으로 수령 200년 이상의 울진 금강송 천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소나무 산책로를 따라 다양한 전시실과 볼거리, 체험거리도 눈길을 당긴다. 금강송이 빚은 천년의 향이라는 주제로 울진금강송송이축제가 2015년 10월에 있었다. 금강송퍼포먼스, 놀이마당, 전국의 대표 먹거리까지, 축제의 명소로 이미 자리매김한 울진엑스포공원. 턱없이 부족한 시간 앞에서 외양만 살피다 왕피천 둑길로 올라선다.
너른 해변에 모래가 티 없이 곱다. 돛을 잡고 바람을 가늠하며 수면 위를 미끄러져 내리던 윈드스핑의 아찔함도, 연인과 아이와 모래성을 쌓던 추억도, 관광객?피서객들의 발자국도 지우고 해변은 조용하다. 백사장은 또 채우기 위해 비우고 있는 중이다. 봄이 오면 또 어떤 풍경들로 채워질까. 한바탕축제의 장을 예감하며 남대천 울진은어다리로 올라선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왕피천 하구와 염전해변, 남대천의 은어다리를 건너 산으로 가는 철재계단을 오른다. 경사 심한 오르막길 로프를 잡은 손끝이 떨린다. 영하의 날씨임에도 얼굴에 와 닿는 울진 바람은 차지 않아 좋다. 인적 없는 산을 내려와 이제는 포장도로다. 바다 쪽 예상은 빗나가고 좌측으로 방향을 튼다. 임도와 밭, 야산, 육교 그리고 연지1리 표지석이다. 차도를 따라 다시 7번국도 굴다리, 울진군의료원, 연호공원이다.
동면에 들어 꿈꾸고 있는 연호를 빠져나간다. 연지길 풀무원녹즙원 모퉁이를 돌아 다시 오른쪽 굴다리, 바릿재 너머 일렁거리는 바다가 보인다. 대나리항길 바다가 일대 장관이다. 소리도 없이 물마루가 일어서고 있다. 물마루가 몰려와 부려놓은 물거품이 온 바다를 덮고 있다. 하얗게 포말 이는 바다. 어부들은 포말을 메밀꽃이라 부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북쪽으로 매서운 메밀꽃이 이는 한겨울의 바다로 가만히 당신을 보러갑니다’라고 노래한 시인의 시가 생각나는 날이다. 연지리 바다도 양정포구도 하얀 포말, 아니 메밀꽃으로 뒤덮였다.
햇살 눈부신 항구를 끼고 생선구이집, 횟집, 해장국집에 이어 커피향이 간절한 카페까지 눈길을 끈다. 바닷가 전망 좋은 펜션들이 내다보고 있는 봉평해수욕장 초평교를 넘어선다. 죽변의 상징물 대나무와 게의 조형물이 먼저 길손을 맞는다. 게의 다리 모양이 대나무와 같이 곧다하여 대게라 이름 붙였다는 뜻과도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나무가 많은 바닷가 끄트머리 마을이라 하여 죽빈, 죽변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북쪽 바닷가 절벽에 데크길이 언뜻 보인다. 죽변등대 가는 길이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대숲에 숨어 보였다 안보였다. 길은 또 어느새 저 앞에서 얼굴 내밀고 있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의미 있는 곳을 둘러보고 싶다면, 봉평해수욕장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신라비 전시관이 있다. 국보 제242호로 지정된 울진 봉평리 신라비는 원래 논에 묻혀있던 것을 객토작업 중에 발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비석문화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게 실내전시관, 비석거리, 야외비석공원, 체험교육장 등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훈훈한 정이 넘치는 오일장 구경을 하고 싶다면 연호공원에서 도보 5분 거리, 울진재래시장이 있다. 울진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으로 매월 2, 7로 끝나는 날 장이 열린다. 인근 동해안에서 잡아 올린 울진대게와 오징어, 미역을 비롯한 싱싱한 수산물과 가까이 통고산에서 채취한 산나물과 송이, 각종 채소와 풍성한 먹거리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