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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정대 변호사
많은 여성이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다. 피해자들로부터 지목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추행 행위에 대해 고개를 숙여 사과하거나 일자리에서 물러나고 있다. 경찰은 수사에 나서고 대통령까지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에 대해 적극적인 수사와 엄벌을 요청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오래전에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했지만 고통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나는 피해자들의 고통이 깊어지는 이유는 성추행이나 성폭행 사실 자체보다 피해자들을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한 사람들이 세상에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고 조명까지 받고 있는 사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변호사로서 범죄 피의자로 수사받고 피고인으로 재판받는 사람들을 변론하기 위해 만나보면 대부분 범죄자는 악성(惡性)이 잘 실감되지 않는다. 사법권력의 가장 강력한 작용인 형사 절차에 놓이게 되면 대부분 사람은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해진다. 인신(人身)까지 구속되면 가족과 사회로부터 차단될 뿐만 아니라 국가권력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게 된다. 범죄자의 악성이 위축된다. 이런 과정에서 수사나 재판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대부분 용서를 구하고 잘못을 뉘우친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잡히지 않거나 잡을 수 없는 범죄자들의 위세에 의해 잊히지 않고 되살아난다. 정의를 위한 첫걸음은 수사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받는다는 명제가 언제나 어디서나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교통 단속처럼 운이 나쁠 때만 걸려드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수사의 개시는 정의라는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는 행위이다. 수사를 개시하지 않으면 아예 정의라는 과녁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물론 수사의 공정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수사의 공정성은 진실을 찾기 위해 폭넓은 조사가 이뤄지고 허용되는 데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나라 수사기관은 적극적인 수사를 피하고 고소나 고발을 기다리는 처지에 놓인 것 같다. 고소나 고발이 넘쳐난다고 하더라도 #ME TOO에서 보듯이 돈이나 사회적인 지위나 권력의 보호막을 친 경우는 고소나 고발을 하기 어렵다.

그것은 성범죄뿐만이 아니다. 기획부동산 투자사기, 재건축조합의 비리, 조직범죄 등은 합법적인 계약을 가장한다. 이런 범죄들은 ‘뛰어난’ 사람들에 의해 이뤄지고 불법적인 거래로 수백억, 수천억 원의 돈을 챙기고도 그 돈이나 사회적인 지위나 권력의 비호로 보호막을 친다. 거악(巨惡)을 수사하기 위해 고소와 고발을 기다리는 것은 정의를 운에 맡기는 것과 같다.

수사받지 않는 범죄는 사법정의를 불신하게 한다. 수사기관은 불법이 횡행(橫行)하지 않도록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범죄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는 없다. 범죄를 완전히 예방하거나 범죄를 완전히 처벌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합법을 가장하여 버젓이 드러내고 거리낌 없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범죄를 통해 성공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경찰이나 검찰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거악에 대해서는 고소나 고발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합법 뒤에 있는 불법을 파고들어야 한다. 돈이나 사회적인 지위나 권력의 보호막을 갖추고 합법을 가장한 자들, 그 내부자들의 거액의 뒷거래를 살펴야 한다. 수사에 착수하는 것이 정의를 찾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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