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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정대 변호사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다. 웃음이 가득한 얼굴들, 기쁨과 열정으로 빛나는 표정들은 보는 이들까지 따뜻한 기분이 되게 한다.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한 입장식이 있을까? 평창동계패럴림픽 개회식 중계방송으로 각국 장애인 선수들의 환한 모습을 보면서 행복한 감동에 사로잡혔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입장식을 지켜보며 따뜻하고 행복한 기분을 맛보았다.

3월 9일부터 18일까지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은 동계올림픽보다 규모와 참가 인원은 적지만 입장식에서 더 깊고 더 큰 감동을 주었다. 평창올림픽스타디움 개회식장을 들어오는 참가 선수들과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더 행복하고 더 열정적으로 보였다. 환하고 행복한 느낌이 그대로 세상에 전해지는 것 같았다.

젊은 시절 나는 몇 년간 사회부 기자로 일한 적이 있었다. 초년 기자로 취재를 하기 위해 장애아동들을 교육하는 특수학교 몇 군데를 간 적이 있었다. 아무런 선입견도 가지지 않았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장애아동을 보는 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곳의 아이들도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티 없고 행복하게 보였다. 아니 눈빛이 더 순수하고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때 나는 스스로를 돌아봤다. 만약 내가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으로 장애를 입게 되면 과연 저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가 있을까? 좌절하지 않을까? 왜 하필이면 내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반문하고 순간마다 스스로를 또는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을까? 그렇게 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아마 그럴 것이다.

아무도 장애를 가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신체의 장애는 활동의 장애가 될 것이고 생활의 장애가 될 것이고 결국 삶의 장애가 될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하지 않더라도 장애는 삶의 한 부분이 되기도 한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거나 가장 활동적인 시기에 사고로 장애를 입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장애가 존재한다면 남는 문제는 그것을 안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가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장애에 대한 원망과 후회가 상황을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 아님을 깨달을 것이다. 그들은 이 과정에서 사람에게 주는 가장 값진 보석을 찾게 된다. 그것은 없는 것을 원하기보다 있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것은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함과도 통한다. 삶에 겸손해하는 마음이다.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감사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 나와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어진다.

나는 장애아동 학교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고 그런 행동을 경험했다. 교장실에 들어가기 위해 발판에 신발을 벗자 지나가는 한 아이가 신발을 만져 바르게 두었다. 나는 고맙고 대견했다. 내가 교장 선생님께 그 일을 말하자 그는 그곳의 아이들이 사람을 더 사랑한다고 알려 주었다.

평창동계패럴림픽이 열리는 열흘 동안 차가운 빙판이나 흰 설원은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신나는 장소가 될 것이며 그들의 몸을 더욱 뜨겁게 만들 것이다. 우리도 그들의 열정에 함께 기쁘고 행복한 시간이 될 것이다. 평창동계패럴림픽 참가 선수들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넘는 이들이다. 진정한 승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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