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방에 남아 빈 방을 닦고 있는 거울처럼

그 집의 벽들은 아직 비에 젖고 있다
현관 앞에 쓰러진 우산이 있고 지붕을 넘어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소리 내어 운다 나는 꽃을 들고 있다

이른 새벽 청소부가 올 때까지
쓰레기봉투처럼 웅크리고 싶은 밤이 있다
자동차가 달리는 8차선 도로를 천천히 가로질러

죽어가는 밤과 죽은 뒤의 밤을
죽은 사람 곁에 앉아 산 사람이 지샌다
삶이 죽음으로 옮겨가는 낮을 지나
죽음이 삶을 전염시키는 밤으로

눈을 감고 있으면 생각 없는 몸이 어딘가로 간다생각만 남아 몸을 생각한다 (후략)




감상) 그 입구까지 갔다가 돌아온 적 있다. 그를 위한 조화가 병원 입구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가 생전에 그렇게 실컷 꽃을 받아 본 적이나 있었을까. 그래서 차마 그 꽃길을 걸어 그에게로 갈 수 없었다. 그 순간 그는 살아있었고 나는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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