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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2400만 세입자는 대한민국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다. 세입자는 분명히 세금도 내고 노동도 하고 소비도 한다. 무엇보다도 자식을 키워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정책에서 ‘패싱’당하고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있다.

요즘 남북 관계, 한반도 평화 설계 과정에서 일본이 소외되고 있다 해서 ‘저팬 패싱’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대한민국의 세입자는 일본의 아베 정부와는 달리 이웃의 화합을 방해하려 하지도 않고 할 일은 다 하고 있음에도 무시당하고 소외당하고 있다. 국민의 절반에 이르는 세입자 계층을 무시하고 소외시키면서 ‘공동체’를 강조하고 ‘함께 나누는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은 나무 꼭대기에서 물고기 찾기다.

세입자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잠시 살펴보자. 국토부가 발표한 ‘2016년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한국의 자가 거주 비율은 56.8%이다. 세입자 비율이 43%라는 말이다. 통계에 안 잡힌 세입자가 많은 걸 생각할 때 세입자 가구는 이보다 더 많다. 살 집이 없어 얹혀사는 사람들도 많다.

자가 거주비율은 소득이 낮을수록 비율이 낮다. 고소득층(소득 10분위 중 1~2분위)은 73.6%, 중소득층(5~7분위)은 59.4%인데 비해 저소득층은 46.4%(1~4분위)에 불과하다. 소득이 낮을수록 세입자 가구가 많다는 뜻이다. 수도권만 따로 떼어서 보면 저소득층의 자가 거주 비율은 33.9%에 불과하다.

소득계층별로 세입자 가구의 전·월세 비율을 보면 소득이 낮을수록 월세 비율이 높다. 고소득층 세입자 가구는 전세 비율이 월세 비율보다 배가 많고 중소득층은 전세와 월세가 비슷하다. 저소득층은 월세가 전세보다 세배나 높다. 소득이 낮을수록 월세 부담으로 고통을 더 느낀다는 거다. 또 보증금이 적을수록 월세 부담은 더욱 커진다.

2016년 점유형태별 평균 거주 기간을 보면 자가는 10.6년인데 비해 세입자 가구는 3.5년이다. 자가 소유자가 한번 이사 갈 때 세입자는 세 번 이사 간다는 뜻이다. 같은 ‘이사’인데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자가 소유자는 자기가 원해서 이사 가는 데 비해 세입자는 자기가 원하지 않음에도 기한 됐다 이사 가라, 원하는 만큼 올려 줄 수 없으면 이사 가라 해서 이사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사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이사비 부담은 더욱 커진다. 보증금이 500만 원인 가구는 두세 번 이사하면 다 없어진다.

독일은 세입자 평균 거주 기간이 12.8년이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자가 소유자의 평균 거주 기간은 11.3년이다. 둘이 비슷하다. 주거생태주기가 최소 10년은 된다는 뜻일 게다. 한국 세입자는 생태주기를 채우지 못하고 강제로 내쫓기고 있다. 대한민국은 세입자와 임대인 ‘쌍방의 자유로운 계약’을 핑계로 세입자 대중의 기본권인 주거의 권리를 박탈, 훼손하고 있다.

독일 세입자가 주거 권리와 주거안정을 보장받는 이유가 뭘까. 독일 민법 573조는 ‘정당한 사유 없이는 해지 강요 못 한다’고 못 박고 있다. 같은 조항에서 ‘임대료의 인상을 목적으로 해지를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집이 낡은 게 명백해서 재건축을 해야 하거나 임대료를 안 내거나 층간소음을 일으키거나 직계가족이 들어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살던 집에서 계속 살 수 있다. 이게 ‘계속 거주권’이다. 물론 임대료도 공정한 룰에 따라 결정된다.

주택임대차보호법 6조는 임대인에게 계약 연장을 거부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국가가 법률을 동원하여 세입자의 주거권을 파괴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임대료에 대한 룰도 없다. 올리고 싶은 만큼 부르면 된다. 왜 그렇게 높게 부르냐고 물을 수도 없다. 임대인에게 나가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능을 법이 부여한 탓이다. 이래서 없는 사람들이 ‘헬조선’을 외치는 것이다. ‘헬조선’은 청년들만의 구호가 아니다.

이제라도 계속 거주권을 도입하여 모두가 편안한 주거를 누릴 수 있도록 하자. 국민이 편안해야 나라도 편안해진다.

(이 컬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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