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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꽃 장미! 장미와 같은 시민이

한정규 문학평론가   |   등록일 2018.05.1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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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규 문학평론가
장미꽃의 아름다움은 여러 말이 필요 없다.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 할 것 없이 세계인의 꽃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모두가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장미꽃을 국화로 하는 나라도 영국, 미국, 불가리아, 모로코, 룩셈부르크, 이라크 등 여섯 개 국가로 네덜란드 국화인 튤립과 같이 가장 많은 나라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장미는 그리스 로마시대에 서아시아와 유럽지역의 온대, 한대, 아열대 지방 등 넓은 지역에 분포돼 있었으며 덩굴장미와 나무 장미로 야생의 자연종과 개량종 관상용과 향료용 등 200여 종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사 한림별곡 가사에 장미꽃이 등장하며 조선왕조실록과 삼국사기에서도 장미꽃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오래전부터 자생해 왔다.

장미는 꽃의 여왕이라 불리며 남자가 여성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 또는 생일 같은 좋은 날 선물로 주는 꽃 중 하나다.

그런 장미를 고대 로마에서는 비너스의 상징으로 그리고 기독교가 유럽으로 전파된 이후에는 모나리자를 상징했다. 또 프랑스와 터키에서는 장미를 식용으로 쨈으로 만들어 먹기도 하고, 스코틀랜드에서는 흰색장미가 가을에 피면 결혼하지 못한 처녀 총각들에게 빨리 결혼하라는 징후로 여겼으며 그리스에서는 사랑의 상징인 큐피드와 영혼의 상징인 프시케가 결혼식을 할 때 결합의 상징으로 땅 위에 장미를 뿌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 뉴욕 한 방직공장여성노동자들이 1908년 파업 투쟁을 하면서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 원한다’ 라고 외쳤다. 그때 주장하는 빵은 생존의 권리를, 장미는 인권과 행복추구의 권리로 상징했다 한다. 그 후부터 미국에서는 장미 하면 인권 및 행복추구의 권리로, 미국인들은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다.

또 불가리아 카잔누크계곡에서는 장미수확을 자축하고 다음 해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매년 5월 말에서 6월 중 세계적인 장미축제를 한다. 카잔누크계곡 로즈벨리는 발칸산맥과 트라키아평야 사이에 동서로 길게 뻗은 곳으로 향수제조원료인 장미 오일을 생산하는 장미꽃 재배농장이 몰려 있다. 그곳은 축제 기간이 되면 거리 전체를 장미꽃으로 장식하고 여성들이 민속 의상을 하고 장미꽃 따기를 한다.

영국은 1455년부터 1485년까지 30년간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이 왕위계승을 놓고 싸우면서 랭커스터 가문은 붉은 장미를 요크 가문은 흰 장미를 그린 기를 앞세워 싸웠다. 그것을 두고 장미전쟁이라고 부른다. 그토록 장미는 영국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같이 장미에 대한 적잖은 이야기가 있다. 그런 아름다운 꽃, 사랑을 상징하는 꽃, 행운을 불러오는 꽃, 등 갖가지 의미를 지닌 꽃 그런 장미꽃의 도시 포항, 포항의 꽃 장미와 같이 시민의 마음씨도 아름답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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