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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 주지 효광 스님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한 등불이 되자"

마음의 눈 뜨고 희망·평화 있는 상생의 사회 함께 만들어 나가야

이기동 기자   |   등록일 2018.05.2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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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사 주지 효광 스님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인 팔공총림 동화사 주지 효광 스님(제9교구 본사 교구장)은 부처님오신날 봉축사를 통해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한 등불이 되자”고 강조했다.

이 말씀은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처음 하신 탄생게의 말씀과 같은 의미로 天上天下唯我獨尊(천상천하유아독존) 三界皆苦我當安之(삼계개고아당안지)-‘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니 온 세상 모든 괴로움, 내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는 오직 부처님만이 존귀한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그 존재 의미가 모두 존엄하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하는 인본 선언이다.

특히,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은 바로, 마음의 눈을 뜨자는 것이며 눈을 감고 ‘어둡다’ ‘보이지 않는다’ ‘캄캄하다’ 하는 어리석은 미망(迷妄)에서 벗어나 눈만 뜨면 칠흑 같은 어둠은 사라지고 대명천지 밝은 환희의 세계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다.

효광 스님은 “오늘은 우리 모두가 등불을 밝히듯 마음의 눈을 뜨는 날이다. 눈을 뜨면 우리는 서로 서로가 중중무진의 연기법(緣起法)안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하나’”라며 오늘은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한 등불이 되자, 오늘, 만나는 모든 이웃들을 부처님으로 볼 때, 이것이 부처님오신날의 참다운 뜻”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또, “소외와 무관심의 어려운 이웃에게도 희망의 등불이 되고 국가와 인류에게도 평화와 행복의 빛이 되는 상생(相生)의 사회를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 나가자”고 말했다.

▲동화사(桐華寺)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며 통일신라시대의 절로 금산사·법주사와 함께 법상종 3대 사찰의 하나다.

고려 문종 때에는 이 절에서 원천 법천사의 지선국사가 배출됐고 그 문하에서 속리산 승통 석규를 비롯해 1,000여 명의 승려들이 나왔다.

임진왜란으로 동화사 전체가 불타버린 후 여러 차례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으며 경내에는 조선 영조 때 중건된 대웅전과 극락전을 비롯해 20여 채의 건물이 남아 있다.

이 밖에도 보물로 지정된 당간지주(보물 제254호)·금당암 3층 석탑(보물 제248호)·비로암 3층 석탑(보물 제247호)·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동화사입구 마애불좌상(보물 제243호)·석조부도군 등이 있다.

493년(소지왕 15) 극달(極達)이 창건해 유가사(瑜伽寺)라 불렸으며 이후 832년(흥덕왕 7) 왕사 심지(心地)가 중창했다. 당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절 주위에 오동나무꽃이 만발해 동화사로 고쳐 불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삼국유사’에는 율사 진표(眞表)로부터 영심(永深)에게 전했던 불간자(佛簡子)를 심지가 다시 받은 뒤, 이 팔공산에 와서 불간자를 던져 떨어진 곳에 절을 이룩하니 곧 동화사 참당(籤堂) 북쪽의 우물이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하지만 극달의 창건연대인 493년은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이전의 시기이므로 공인되기 전에 법상종(法相宗)의 성격을 띤 유가사라는 사명(寺名)이 붙여졌을 까닭이 없다는 이유로 심지가 창건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많다.




이기동 기자

    • 이기동 기자
  • 서울 정치경제부장. 청와대, 국회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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