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상 의자에 앉아 폐전구를 씹는 소년, 눈길이 닿는 곳마다 어둠이 밀려난다

빛과 어둠이 서로를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고철 사이에서 눈을 뜨고 있는 희망을 이해할 수 없다

손가락이 모자라면 팔로 팔이 모자라면 어깨로 소년은 짐을 나른다

그림자가 그늘을 빠져나가고 있지만 나뭇잎이 온몸을 떨고 있지만
보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젖은 장갑을 낀 채 절단기 속으로 몸이 반쯤 잠긴 소년, 말없이 밥을 먹던 가족을 떠올렸다

하나로 뭉칠 수 없는 것
빈 의자에 앉아 골목을 바라보면 세상의 모든 무게가 나를 응시하는 것 같다

손가락이 담긴 장갑이 하수구를 지나는 밤

어느 골목으로 빠져나갈지 모르지만 어떤 향기를 피워 올릴지 모르지만
소년은 끝나지 않는 현실처럼


나의 체온이 된다




감상) 이사를 하고 나면 잊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보지 않으면, 듣지 않으면, 잊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상처는 보이지 않아도 거기 있는 것이었다. 떠내려간 머리카락은 썩지 않을 것이고 묻힌 손가락은 거기에서도 손톱을 키울 것이다. 나는 나를 따라 다닌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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