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즈음에 멈춘 그리운 그 목소리 따라 한걸음 한걸음

김광석길 입구
트로트와 포크송이 주류를 이루던 대중음악계는 1990년대를 지나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시도되고 발전했다. 특히 댄스 음악이 붐을 이루며 소위 비주얼이 되는 가수와 수많은 아이돌이 탄생하고, 음악 소비 형태가 오디오에서 비디오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그 많은 장르의 홍수 속에서 통기타 하나를 퉁기며 나지막이 노래를 들려주던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고 김광석이다.

1988년 친구들과 결성한 그룹 ‘동물원’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89년에 첫 독집앨범을 내고 그 이후로 총 4개의 음반을 발표한다. 그는 TV를 뒤로하고 대학로와 소극장을 중심으로 공연했으며, 1995년에는 1000회 공연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같은 해 김광석은 동물원 시절의 노래와 다른 사람의 노래를 자신에게 맞게 리메이크해 ‘김광석 다시부르기’라는 대중음악계에서도 기념비적인 명반을 2장 발표한다.

그의 노래는 현란한 기교와 수식이 없다. 통기타 리듬에 맞춰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랑을 노래하고 이별에 아파했으며, 꿈을 이야기했다. 때로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흘렸던 뜨거운 피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던 1996년 1월, 돌연 세상을 등지고 만다. 그렇게 김광석은 추억이 되었다.

김광석길의 벽화
2009년, 대구 방천시장의 쇠퇴와 주변 골목들의 슬럼화를 극복하기 위해 ‘방천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그 일환으로 ‘김광석 다시그리기길’도 함께 기획이 됐는데, 회색 벽에 김광석의 벽화를 그리고, 그의 노래로 채워놓았다. 2011년 일부 구간 오픈을 시작으로 점점 벽화의 작품 수를 늘리고 음식점과 카페, 공방 등 개성 있고 다양한 상점들이 입점하면서 규모를 늘려 현재의 길이 약 350m의 구간이 탄생됐다. 대중음악인의 이름을 딴 거리는 전국에서 최초다.

기타를 연주하는 김광석과 벚꽃을 테마로 한 벽화 포토존
이 길은 2013년 안전행정부 주관 ‘우리 마을 향토자원경영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2014년 ‘대한민국 베스트 그곳’에서 선정됐으며, 2015년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한국관광 100선’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을 받았으며, 2017년과 2018년에도 다시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이 되는 등 명실공히 대구 여행의 대표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벽화의 테마는 그의 노래다
각 벽화들은 김광석이 불러온 노래를 테마로 그려져 있다. 입대를 하면서 ‘이등병의 편지’에 눈물을 흘려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이 서른 살을 넘기며 ‘서른 즈음에’ 노래에 소주잔을 꺾어보지 않은 사람 또한 몇이나 될까. ‘사랑했지만’을 들으며 이룰 수 없는 마음에 아파해 보았고,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슴에 담아둔 추억을 꺼내보기도 했을 것이다. 일상을 탈출,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훌쩍 떠나본 추억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의 벽화와 노래가 가득한 골목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인생의 추억을 꺼내보고 보듬어 보게 된다.

사랑의 열쇠
골목의 한쪽 벽면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다른 한쪽에는 다양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스타일 좋은 카페들과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고, 각종 공방들도 자리를 잡고 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오락실도 있고, 추억의 과자를 파는 곳도 있다. 길의 끝에 있는 작은 사진관에서 포토샵을 쓰지 않은 흑백 프로필 사진을 찍어볼 수도 있다. 최첨단을 달리는 세상 속에서 아날로그적인 향기가 물씬 풍기는 길이다. 여느 관광지도 있을법한 진부한 아이템인 사랑의 열쇠도 있다. 이미 많은 연인들이 변치 않을 사랑을 다짐하며 자물쇠를 채워놓았다. 흔한 아이템이지만 그들에게는 특별한 추억이고 의미일 것이다.

버스킹
공연장 앞에서 어느 악사가 버스킹을 하고 있다. 그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을 때도 있고, 아무도 앞에 없을 때도 있지만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음악은 비가 내려서 거리에 더욱더 애잔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김광석길의 공연 또는 버스킹에 대한 정보는 페이스북 ‘이어부르기’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입구에 위치한 대구MBC방송국 정오의 희망곡 공개방송장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길의 입구 쪽에 라디오 공개방송 부스가 있는데, 모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정오의 희망곡’의 공개방송이 매주 토요일 12시 이곳에서 두 시간 동안 진행된다. 길을 걷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공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좋아하는 초대가수를 좀 더 잘 보기 위해 가까이 가서 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뒷사람을 배려해 한 발짝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

카페에서 내려다본 김광석길
짧은 길이지만 걷다가 쉬어가기 위해 예쁜 카페에 들어가 본다. 3층 건물의 카페 옥상 루프탑에 올라가 거리가 아주 잘 내려다보이는 명당에 자리를 잡는다. 바로 아래에 버스킹을 하는 음악가가 잘 내려다보인다. 비가 오는 날은 이 길은 더욱 예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마음이 젖고, 다크한 커피 향에 감성이 젖으며,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김광석의 음악에 젖어든다.

김광석 벽화
벽화길을 걷다가 묘하게 끌리는 어느 벽화 앞에서 멈추어 선다. 포장마차 주점 같아 보이는 벽화인데 테이블과 의자도 놓여 있다. 어묵과 순대, 찐 계란도 먹음직하게 진열돼 있다. 그리고 테이블 앞에는 앞치마를 두른 김광석이 환한 표정으로 손님을 반기고 있다. 저곳에서 그와 소주 한 잔을 하고 싶다.

저곳에서 그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주절주절 내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그는 깊은 미소를 지으며 그저 들어주고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지막이 내게 이런 말을 해줄 것 같다. 힘든 인생살이 수고하고 있다고, 열심히 잘살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다 잘될 거라고….

▲ 글·사진= 이재락 시민기자
김광석, 그가 하늘로 돌아간 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그는 아직도 자신의 노래로 사람들을 안아주고 있다. 힘든 삶을 달래주고 있으며, 아픈 삶을 어루만져 주고 있다. 다행이다. 이런 길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추억하고 그를 만나기 위해 걸을 수 있는 길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사람들은 그가 생각날 때 이 길을 걷는다. 아직 못들은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그리고 아직 못다 한 그와의 대화를 위해서 말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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