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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전(前) 주(週) 제 칼럼의 제목이 ‘두 가지만 알면’이었습니다. 사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윤리와 의리’ 두 가지였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은 또 다른 ‘두 가지’에 대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제가 젊어서 소설을 몇 편 썼고, 수십 년째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관계로 주변 분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나 요청이 몇 개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요?”, “책을 읽어야 하는 진짜 이유 한 가지만 말씀해 주세요.”, “국어(언어) 문제를 잘 풀 수 있는 요령은 무엇인가요?”, “문학 공부에 필수적인 고전이나 명저(名著)를 몇 권만 추천해 주세요” 같은 것들입니다. 대답하기 곤란한 것들이지만 오늘은 그중에서 ‘좋은 글쓰기의 필수적 요령’ 두 가지에 대해서 간단하게 적어보겠습니다. 그 두 가지만 알면 누구나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물론 약간의 연습과정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꾸준하게 ‘밥 먹듯이’ 그 요령을 지켜 글을 쓰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취월장, 어느덧 글쓰기의 고수가 되어 있을 겁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알아둘 것이 있습니다. 좋은 글쓰기는 항상 문학적입니다. 그걸 알고 쓰든 모르고 쓰든 좋은 글은 항상 문학적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글=문학’입니다. 소재나 주제나 용도가 무엇이든 멋있고, 감동을 주는 글들은 다 문학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약간의 비약을 감행한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역시 소설가입니다. 소설은 문학적 글쓰기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정력(精力·심신의 활동력)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그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글을 잘 쓸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저것 필요한 글의 용례도 많이 알고 있고 다른 사람의 글도 아주 꼼꼼하게 읽습니다. 그래서 좋은 글 베끼기도 잘하고 적당한 예시도 잘 찾습니다. 고기 써는 일은 정육점 주인이 제일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혹시라도 제2의 인생이나 부업으로 글쓰기를 택하고자 하시는 분이 계시면 가급적 주변의 소설가에게 습작강평이나 첨삭지도를 청하시기를 권합니다.

글쓰기의 운명은 비유(比喩·다른 것에 빗대어 말함)와 서사(敍事·차례를 정해 이야기함)에 달려 있습니다. 좋은 글쓰기의 두 가지 요령이란 결국 ‘비유와 서사의 성공’입니다. 좋은 글쓰기, 훌륭한 문학은 보통 그 두 가지에서 뛰어납니다. 물론 그 두 가지가 기교적 차원에 머문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엄청나게 큰 인물이나 사상은 그 자체로 큰 비유고 큰 서사가 되기 때문에 자잘한 설명들의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정교한 것과 훌륭한 것이 항상 같이 가는 것은 아닙니다. 대교약졸(大巧若拙, 큰 기교는 어설퍼 보인다)의 이치는 어디서나 통용됩니다.

비유의 대가는 역시 시인입니다. 좋은 시를 읽는다는 것은 좋은 비유를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 읽기는 글쓰기의 필수과목입니다. 물론 장자(莊子) 같은 이들도 비유의 달인입니다. ‘장자’에 등장하는 포정(?丁), 윤편(輪扁), 도척(盜?), 목계(木鷄), 산목(山木), 설검(說劍) 같은 우화는 산문 비유의 한 전형입니다. 자기가 강조하고 싶은 내용을 재미있는 이야기에 의탁해서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본 지면에서도 여러 번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서사를 배우는 데에는 소설 읽기가 가장 효과적입니다. 굳이 이런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 왜 필요한가를 궁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래서 소설이 위대한 것이구나!’라는 자각만 들면 됩니다. 그런 느낌이 드셨다면 남들 작품 읽는 시간보다 내 작품 쓰는 시간을 더 가지시기 바랍니다. 꾸준히 ‘내 글쓰기’에 몰두하면 반드시 응답이 옵니다. 영감(靈感·계시적인 생각이나 느낌)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 한 가지 중요한 말씀을 안 드렸습니다. 글쓰기 역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일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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