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준수 순회취재팀장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합격할 수 있다. 자격증도 필요치 않다. 전과경력이나 체납액이 많아도 된다. 독특한 바람이 거세게 일면 능력과 상관없이 손쉽게 꿰찰 수도 있다. 지방선거를 놓고 하는 얘기다. 이런 경우가 과거 자유한국당 텃밭 대구·경북에서는 비일비재했다. 깃발만 꽂으면 당선됐기 때문이다. 이번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세와 한국당에 대한 실망이 똘똘 뭉쳐진 광풍이 또 그렇게 만들었다.

애초에 공약이나 정책은 관심도 없었다. 적어도 대구·경북에서는 파란색이냐 빨간색이냐가 중요했다. 백색이나 회색, 노란색이나 녹색 등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니 인물 됨됨이나 능력, 공약을 비춰보는 일에서는 더 멀어졌다.

요즘 화제가 된 이야기가 이런 점을 시사한다. 충북 제천시의회에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입성한 32세의 여성 당선인을 두고 나오는 말인데, ‘시의원은 아무나 하나’가 요지다. 대학 시절 동아리 연합회장, 변호사 사무실 주임 경력이 전부인 그녀가 인구 14만 도시의 시정을 감시·감독할 자격이 있느냐부터 민주당의 비례대표 공천이 잘못됐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민주당 충북도당은 “여성에다 청년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고, 비례대표 공천기준도 만족했다”고 강조했다. 당선인은 “직업을 무직으로 적었더니 논란이 커진 것 같다. 열심히 공부해서 실망 주지 않는 의정활동을 하겠다”고 했다. 대구·경북에서도 한국당 비례대표들이 제천시의원 당선인보다 떳떳했는지는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대구의 한 일간지 여론조사 결과도 아직 회자 된다. 동구청장 후보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소속 39세 청년 후보의 지지율이 부구청장 출신의 한국당 후보, 재선을 노리는 현직 구청장보다 더 높게 나와서다. “모바일 여론조사 방식 탓에 젊은이들이 주로 응답해서 그렇다. 실제 투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위안 삼는 이들도 많았다.

투표 당일 39세의 청년은 현직 구청장 신분의 후보를 일찌감치 따돌렸고, 한국당 후보와는 초접전을 벌였다. 17만1630표 중 5만5546표를 얻어 6만2891표로 당선된 한국당 후보에 7345표 차이까지 따라갈 정도였다. 구의원을 했거나 행정을 접한 경험이 아예 없는데도 말이다. 물론, 지난 1년간 지역민들에게 실망만 안겨준 한국당에 대한 반감이 컸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후보가 내놓은 공약이나 정책보다는 ‘기호’만 보고 찍은 유권자도 많았다.

이제야 털어놓은 동구청 한 간부공무원의 솔직한 심정이다. “아무리 지방선거가 당을 보고 찍는 패턴이 뚜렷하다 하더라도 지지율 조사결과를 보고서는 아찔했다. 펀드 매니저 이력이 전부인 그 후보가 한해 50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주무르며 35만 구민을 대표해 구정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결과가 현실이 되지 않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노파심에 이런 말도 해야겠다. 동구청장에 당선된 한국당 후보가 월등히 더 나은 인물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민주당의 청년 후보를 평가절하할 의도도 전혀 없다.

광풍이 지나간 뒤에서야 이런 고백을 한다.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데 있어서 후보에 대한 인물 됨됨이나 정책 검증이 미흡하지 않았는지 우리 스스로 돌아보자고 하는 얘기다. 2년 뒤 21대 총선 때 같은 광풍이 불더라도 인물 됨됨이, 공약을 더 꼼꼼하게 견줘보자는 말도 보탠다.

배준수 순회취재팀장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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