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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평생 국어 선생을 해 오면서 주위에서 많이 듣는 이상한(?) 말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아이는 영어 수학은 곧잘 하는데 이상하게도(?) 국어를 못한다”는 하소연입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속이 뜨끔거립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학습능력과 관련된 지능은 ‘하나를 잘하면 다른 것도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다중지능 이론’이라는 것도 있어서 인간의 지적 능력에 한계를 두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공부는 다 잘하는데 유독 국어 공부만 못하는 경우가 왜 생기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고민은 깊은데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이론이 아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학창 시절에 국어 쪽 공부를 잘 못하는 편이었습니다. 중학교 때는 전교 석차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면서도 3학년 때의 국어 성적이 ‘미(美)’였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더 했습니다. 언젠가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보고 크게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시내의 한 사립학교 교사직에 응모했을 때였습니다. 필요한 서류 중에 고등학교 생활기록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3학년 국어2 성적이 ‘가(可)’였습니다. 처음에는 ‘가, 나, 다’의 ‘가’인 줄 알았습니다. 한참 있다가 그것이 ‘수, 우, 미, 양, 가’의 ‘가’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 학교에 가지 못했습니다. 학창시절의 국어성적이 아주 나빴다는 게 제 콤플렉스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는 그 이유를 몰랐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독해력 쪽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난독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악성(惡性) 독자였던 것입니다. 독서 이론가들은 독서의 수준을 크게 셋으로 나눕니다. ‘텍스트를 자기 내용 위주로 읽는(투사적) 독서’, ‘텍스트 내용을 최대한 수용하는(해설적) 독서’, ‘텍스트와 자기의 융합을 이루는(시학적) 독서’가 그것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물론 ‘융합적 독서’입니다. 텍스트가 모르는 의미, 작가가 애써 감추고 있는 의미까지 다 읽어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 시절에는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입니다. 학생 때는 텍스트의 내용에 보다 충실하고 편중된 ‘자기 생각’에 빠지지만 않으면 충분합니다. 보통 학습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의 난독증은 독서의 마중물이 되는 선행 학습이나 교양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필요 이상으로 자기 주관이 너무 강한 탓이거나, 은유적 사고와 환유적 사고의 불균형에서 올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 말을 잘 안 듣는 고집 센 아이이거나 동일성의 원리에는 쉽게 동의하지만 인접성의 원리에 동의하는 법을 아직 모르는 아이들이(가끔씩 친구들에게 싸가지가 없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영어 수학은 잘하는데 국어는 못하는 학생이 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상한 현상’을 타개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눈에 확 들어오는 이론을 아직 보지 못한 관계로 제 경험에 의존해서 한 말씀 드릴 수밖에 없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코드(法)보다는 맥락(時), 은유(대치)보다는 환유(확장)’가 되겠습니다. 코드 공부에서는 자기 이해가 관건이 아니지만 맥락 공부에서는 자기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은유 공부가 합리적, 인과적 사고와 관련이 깊다면 환유 공부는 공감적, 공존적 태도와 관련이 깊습니다. 맥락과 환유가 중요하다는 것인데, 인간 이해와 관련된 문제해결력을 높이는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면 저절로 ‘이상한 난독증’은 해소가 됩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그 나름의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매사 역지사지 할 수 있게 되면 수험생의 난독증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제 경우가 그랬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 드립니다. 두 가지만 알면 되겠습니다. 국어 공부는 코드보다는 맥락, 은유보다는 환유입니다. 자세한 공부 방법은 아이의 국어 선생님과 상의하시고요.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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