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호순 병원장.jpg
▲ 곽호순병원 병원장

어떤 사람은 약속 시간에 늘 늦다. 그 때마다 핑계가 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핑계는 “차가 밀려서…”이고 때로는 “정시에 나왔는데 집에 두고 온 물건이 있어서…”라거나 혹은 ”버스를 잘 못 타서…“라거나 “약속 시간을 깜빡했네” 등의 별 핑계를 다 둘러댄다. 그러나 한 번도 진심으로 사과를 하지는 않는다. 근데 늘 늦는 그를 보는 친구들은 그가 둘러대는 이유는 관심 없고 ‘저 친구는 이 모임을 싫어하는 것 같아’라는 느낌을 가진다. 왜 그럴까? 그가 둘러대는 이유는 핑계로만 느껴지고 그의 진심은 아마 다른 곳에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 모임을 싫어하는 ‘감추어진 마음’은 다른 사람들 눈에는 다 보이는데 유독 자신만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 감추어진 마음이 바로 그 사람의 행동을 결정한다. 아무리 그 감추어진 마음을 이겨내려 해도 이길 수 없다. 그 감추어진 마음은 ‘드러난 마음’ 보다 더 힘세며 역동적이고 충동적이며 쾌락주의적이다. 정신분석가는 이 감추어진 마음을 ‘무의식’이라 부르고 드러난 마음을 ‘의식’이라 부른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인간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이유 없이 불안하거나 이유 없이 좋을 수’ 없다. 단지 그 이유를 모를 뿐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지만 이유 없이 매력을 느끼고 끌리게 되거나, 반대로 그가 두렵거나 불안하다면 이는 감추어진 마음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지 그 사람이 그렇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우연하게 보이는 모든 정신 활동도 다 특정한 동기와 이유를 가지고 있다 (이를 ‘정신 결정론’이라 한다)고 하고 이 특정한 동기나 이유는 바로 무의식이라는 감추어진 마음이 작동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분석가들은 ‘모든 인간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한다.

어떤 유능한 정형외과 전공의가 있었다. 결혼식을 하루 앞둔 날 생긴 사건이 참 흥미롭다. 아무리 바쁜 전공의라도 결혼식 전날은 당연히 휴가를 받는다. 그도 휴가를 받았다. 근데 이유 없이 병원에서 뭉그적거리다가 그만 응급환자를 받게 되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그는 수술을 자청했고 동료들의 바쁜 일손을 들어 주게 되었다. 휴가를 받았으나 몇 시간 동안 응급 수술을 자청해서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만 교차로에서 푸른 신호등임에도 불구하고 급제동을 하고 말았다. 당연히 뒤차가 추돌을 하게 되고 그는 목을 다치고 구급차에 실려서 그가 일하는 병원에 응급환자로 들어오게 되었다. 다행히 큰 사고가 아니었지만 그는 침상에 누워서 안정을 취하여야 했고 그 결혼은 어쩔 수 없이 연기되고 결국 파혼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더 행복했다. 당시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결국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는 지금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그런 그에게 물었다, 그때 왜 푸른 신호등에서 급제동을 했는지를. 아직도 그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그가 싫어하는 결혼을 해야 하는 현실을 어떻게든 피해 보고 싶은 무의식이 만든 결과라는 것을 남의 눈에는 다 보인다. 그만 모를 뿐이지.

이렇듯 무의식은 어린아이와 같다. 그래서 브랜너(Brenner C, 1976)는 ‘어른 속에 아이가 살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 어른들은 다 마음속에 아이를 하나씩 품고 살아간다는 말이다. 모든 정신 행동은 이 아이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덜 성숙한 아이, 조숙한 아이, 불안한 아이, 이기적인 아이, 우울한 아이 등 별별 아이들이 성인들의 정신 행동을 결정한다. 정신 치료자는 이런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달래고 이끌고 공감하고 스스로 문제를 알고 극복하게 해서 성장해 나가도록 만드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