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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젊어서는 풍경(風景)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좋은 풍경 앞에서 넋 놓고 감탄을 한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한 번 있기는 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군에 가서 밤새 야간 행군을 하고 물먹은 솜처럼 잔뜩 겁먹고 지쳐서 문득 마주쳤던 새벽녘의 화순 적벽(赤壁)의 장엄함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러나 그것 말고는 제 기억이 아주 심심합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제 젊은 시절은 풍경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나이 들면서 달라졌습니다. 어디를 가든 주변 환경을 먼저 봅니다. 산, 들, 나무, 바위, 물, 집 같은 것들의 모양과 조합에 관심이 갑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친구나 친지의 시골집을 방문할 시는 금계포란(金鷄抱卵), 유어농파(遊魚弄波), 보검출갑(寶劍出匣), 매화낙지(梅花落地) 같은 듣기 좋은 사자성어(모두 자손이 번성하고 훌륭한 인재가 날 터라는 뜻입니다)를 총동원해서 집터의 좋은 지세(地勢)를 상찬하곤 합니다. 그렇게 수다를 떠는 것이 좋은 사람을 제게 보내주신 감사한 풍경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여기곤 합니다.

풍경 사진도 자주 찍는 편입니다. 어딜 가든 시간만 나면 꼭 사진을 찍어 저장합니다. “사진 찍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시던데요” 어쩌다 한 번씩 페이스북에 올리는 저의 풍경 사진을 두고 그렇게 격려 말씀을 주시는 분도 간혹 계십니다. 며칠 전에도 한 번 있었습니다. “작가라서 그런지 프레임을 잡아내는 어떤 탁월한 직관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라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물론 과찬입니다. 절대 사실이 아닙니다. 프레임(예술작품의 틀)을 잡아낸다는 것은 전문가들이나 하는 일입니다. 언감생심, 저로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사진 찍기와 관련해서 저는 완전 문외한입니다. 사진의 ‘사’ 자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진 찍기에서는 특히 ‘보는 눈’이 중요한데 제겐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냥 기분대로 막 찍을 뿐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상적인 풍경을 만나면 사진을 찍고 거기다가 제 이야기를 슬쩍 얹는 기술은 있는 것 같습니다. 시중에서 흔히 말하는 ‘스토리텔링의 기술’입니다. 아무래도 평생 일기나 편지 같은 형식으로 꾸준하게 제 이야기를 써온 것이 그런 작은 기술 하나는 갖게 한 것 같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철들고 여태까지 수백 수천 장의 사진을 찍었어도 찍기 전에 무엇을 생각하고 셔터를 누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보이는 대로 사진을 찍고, 나중에 그것들을 하나씩 펼쳐보면서 풍경에 어울리는 ‘문자’를 몇 자 덧붙이곤 합니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도 그런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 피서를 겸해서 아내와 함께 다녀온 부산, 경주 등의 출장지에서 찍어온 몇 장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한적한 시골길 위의 공들여 지은 예쁜 집들과 오래된 사적(史蹟) 곁을 지키는 나이 많은 나무들, 끝없이 시원하게 트인 바닷가 풍경, 넓고 쾌적한 카페의 내부 정경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아마 최근에 제가 동경하거나 욕망하는 공간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사진 속의 풍경들에 덧붙이는 글들도 짧습니다. 문장 말미가 ‘~보기에 좋다, ~살고 싶다, ~(못 가져서) 아쉽다’로 끝나는 게 많았습니다.

엉뚱한 생각 하나가 들어옵니다. 당대에 홀대받았으나 후대에 와서 크게 성공한 예술품들은 모두 ‘당대의 강요’를 거부하고 작가 스스로 내면의 표현에 몰두했던 것들이었습니다. 힘센 ‘보는 눈’들을 무시하고 오직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린 작품들이었습니다. 저도 풍경 앞에서 절대 ‘문자’를 앞세우지 말아야겠다고 새삼 다짐합니다. 머릿속에 너무 많은 문자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있으면 자작 찾아오던 풍경들마저 지레 겁먹고 달아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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