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스런 주가각 골목길.
우리는 현지식으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중국의 고풍이 살아 숨 쉬는 전통의 정원인 예원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상해노가(上海老街) 출입문으로 들어서니, 고온으로만 느꼈던 낮과 다르게 습기에 바지가 살갗에 쩍쩍 달라붙었다. 오색 불빛으로 감싸 안은 중국식 고택이 한껏 멋을 부리며 화려함의 극치를 보였다. 거리에는 쏟아지는 관광객들이 홍수처럼 몰려다녔다, 예원의 거리 곳곳에는 낯선 중국식 음식들이 오가는 행인들을 유혹했고, 거기에 순응이라도 하듯 행인들도 주전부리를 아끼지 않았다. 또 한쪽에서는 젊은이들이 버스킹으로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숙소에 돌아오니 한국 시각으로 밤 11시가 넘었다. 필자가 아는 패키지여행은 여행지에 관한 사전 공부나 교통편, 숙소, 식비 등을 체크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많은 투어를 하다 보니, 참가한 일행들이 대개 힘에 부치거나 몸살이 난다는 사실이다. 강으로 둘러싸인 호텔은 기대 이상으로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첫날 투어를 무사히 마치고 잠시 긴장을 내려놓으니,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진통제, 종합감기약 등으로 육신의 고단함을 애써서 달래고 있었다. 다들 새벽같이 모여서 벅찬 하루 일정을 보냈지만, 별 탈 없이 주어진 투어를 잘 소화한 것이다. 우리는 또 다른 내일을 기대하면서 깊은 숙면에 빠져들었다.

다섯 시 반, 알람 콜이 꿀잠을 깨웠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지체 없이 둘째 날 투어를 시작했다. 안내하던 가이드가 “이런 날씨는 개가 짖는다”라고 하면서 연신 상하이 맑은 날씨에 감탄했다. 전용 버스 차창에 비치는 이채로운 풍경은 단연 오토바이 행렬이었다. 차도와 자전거도로, 인도가 엄연히 구분되어 있었지만, 오토바이 행렬은 아무런 차선의 제약도 없이 나름대로 질서 있게 도로를 누비고 있었다. 또 재미있었던 광경은 하나같이 헬멧을 쓰지 않았고, 그렇다고 누구 하나 불안한 모습으로 주행하지 않았다. 둘째 날, 첫 방문지는 우리에게 너무도 많이 알려져 친숙한 상해임시정부청사였다.

포항예총 탐방 팀은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상하이 마땅루 좁은 길로 들어섰다. 삼층 벽돌집으로 지어진 상해임시정부청사는 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충칭으로 확장하여 이전했다. 상하이에 있는 임시정부의 역사성은 필자가 굳이 언급할 필요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진을 금지한 임시정부청사 내부의 좁은 통로를 지나니, 역사 속에 사라져 간 선열의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에 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청사를 돌아보니 그동안 필자 나름으로 자긍심을 갖고 있었던, 역사극 창작을 해왔던 졸고의 시간이 새삼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유물 전시관을 내밀하게 둘러보니 어느새 민족의 동질성이 발현되고 있었다.

동양의 베니스로 불리는 주가각 유람선 투어.
우리는 상하이의 낭만과 여유가 살아있는 동양의 베네치아 주가각을 찾았다. 한낮을 향한 본격적인 더위는 피부의 감성을 잘 아는 여인들이 준비한 양산에서 알 수 있었다. 유난히 주 씨 성을 가지신 분이 많이 모여 산다는 주가각은 포항의 동빈 내항과 여러 가지로 닮아 있었다. 포항예총 탐방 팀은 천천히 삼삼오오 거닐며, 우아하게 강변을 연결한 방생교를 지나 청나라 우체국을 관광한 후, 골목길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체험 학습을 했다. 또한, 포항의 예인들은 제각기 아름다운 수변을 배경으로 작품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우리는 중국인 특유의 여유가 묻어나는 주가각을 뒤로하고 나룻배를 타고 입구로 나왔다.

▲ 세계적 유명 브랜드가 다 모여 있다는 상하이 남경로 보행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중국 최대의 번화가 상하이 남경로였다. 널리 알려진 명성에 걸맞게 수많은 인파가 거리를 메웠다. 행인들은 서로가 서로를 구경시켜 주면서, 수시로 나타나는 바퀴 달린 전차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했다. 우리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지정된 장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관광이 아닌 여행의 참뜻을 느끼려고 했다. 필자가 찾은 곳은 골목 입구에 있는 상점이었다. 한 참 윈도에 집중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맑은 하늘에서 빗물이 떨어졌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건물 위층 대나무 꼬챙이에 널린 빨래가 물방울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중국 최대의 번화가라고 하는 남경로에서 원시적인 상하이식 빨래 말리기가 이채로웠다.

힘들고 지친 가운데 모처럼 저녁 식사는 한식으로 했다. 식사 시간 내내 상하이 탐방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와이탄 야경에 대한 기대로 모두가 잔뜩 부풀어 있었다. 흔히 유명 맛 집이 기다리는 배고픔으로 더 맛을 내듯, 우리는 황푸강의 유람선을 타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막상 유람선을 타고 보니 와이탄 야경은 소문 그대로였다. 진마오 빌딩과 국제컨벤션센터 옆에 걸린 초승달이 강물에 투사되어 신비로움을 더했다. 또한, 첫날 방문한 동방명주 방송탑이 무대의상으로 갈아입은 채, 자태를 뽐내며 탐방객을 유혹하고 있었다. 황푸강 강변에 펼쳐 놓은 수많은 고층 건물 벽에는 환상적인 입체 영상물이, 패키지 투어로 지친 심신의 고단함을 날려주기에 충분했다.

늦은 밤, 환상에 젖어 다시 찾은 필자의 호텔 객실은 실망스러웠다. 청소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인을 알아보니 아침 일찍 바쁘게 나오면서 누군가 ‘청소하지 말라’는 버튼을 누른 탓이었다. 하마터면 와이탄의 환상과 전날 호텔에 대한 좋았던 기억을 지울 뻔했다. 잠시 해프닝이 있은 후,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3박 4일의 일정을 2박 3일에 소화하려다 보니, 이번 투어가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라고 했다. 우리는 그런 와중에도 패키지여행의 필수 코스인 두 곳의 쇼핑도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아마도 지금쯤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잠자리에 들기가 무섭게 곯아떨어졌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호텔에서 바라본 상하이 풍경.
다섯 시 반, 또다시 알람 콜이 깊은 수면에 빠진 일행을 깨웠다. 우리는 준비된 로봇처럼 서둘러 샤워를 하고 캐리어에 짐을 챙겼다. 함께한 대다수 예인은 압축된 일정을 챙기느라 제대로 선물 준비도 못 한 것 같았다.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푸동공항으로 가는 전용 버스에 올랐다. 우리가 탄 버스는 정상적인 속도를 내면서 고속도로를 지체 없이 달렸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톨게이트 부근에서 게걸음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 시간이 지나 안 사실이지만, 한국에서처럼 하이패스 기능이 없어서 일일이 수작업으로 통행료를 정산해야 했기 때문이다.

포항예총 탐방 팀은 푸동공항에 도착한 후 비교적 간단한 입국 수속을 마쳤다. 우리는 짧은 패키지여행 중 정들었던 연변 출신 가이드와 아쉬운 작별 인사를 했다. 누가 말했던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최선을 다한 가이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부산행 아시아나 비행기에 탑승했다. 상하이, 언젠가 자유여행으로 버킷 리스트에 포함시키고 싶은 곳.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라고 한 자크 라캉의 말처럼, 우리는 잠재된 무의식 속에 저마다 예술적 자양분을 재충전하게 되었다. 친절한 스튜어디스의 미소와 정겨운 우리말에 잠자던 이드가 되살아났다.


상하이 /서영칠


곰삭았던 장마
광속으로 달린 여름

내 시심 닮은
상하이는 온통 옥색

마천루 빌딩 숲
빨래 널린 아파트
와이탄 야경

습한 당신에게
선물하고픈 풍경



졸 시를 착상하는 동안 기내 창에 눈에 익은 김해 공항이 나타났다. 포항예총에서 2박 3일에 걸쳐 준비한 ‘상하이 문화탐방’이 사실상 막을 내린 것이다. 이번 해외 탐방에 함께하신 포항의 예인들과 재정적인 후원을 해주신 칠포재즈페스티벌 황인찬 위원장님께 심심한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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