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안 지내는 가정 증가 추세…명절에 대한 인식 변화

서울 홈플러스 강서점에서 모델들이 떡국 떡과 육수 간편식을 선보이고 있다.
“살림살이도 팍팍한데 형식보다는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가짐과 실속이 중요한 것 아닌가요”

경기 불황과 핵가족화의 영향으로 격식보다는 실속을 차리는 차례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윤기가 흐르는 송편과 잡채, 각양각색의 전(煎)과 나물에 갈비찜까지 예로부터 추석 차례상은 가짓수도 다양하고 양도 푸짐하게 올려야 미덕이라 여겼다.

하지만 요즘은 외형적 틀에서 벗어나 각자 형편에 맞게 상을 차려서 명절 스트레스 없이 온 가족이 즐겁게 보내자는 명절 신(新) 풍속도가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어머니와 부인, 초등생 자녀 1명을 둔 직장인 이모(41)씨는 이번 추석에 주문형 차례상을 맞췄다.

주문형 차례상은 전문업체가 차례 음식을 모두 만들어 배송해주는 것으로 다양한 음식을 기호에 맞게 고를 수 있다.

주문자는 배달된 음식을 데워 차례상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 음식을 직접 준비하는 것보다 비용면에서도 저렴하다.

이씨는 “네 식구 밖에 안되는 데 음식 준비하느라 고생하는 것 보다 시간을 아껴 가족 여행을 다녀오는 게 낫겠다 싶어 지난해 설부터 주문형 차례상을 이용하고 있다”며 “과일류만 따로 준비하면 되니 너무 편하다”고 말했다.

이씨와 같은 실속파가 늘면서 유통업계의 간편 제수 음식 시장도 날로 급성장하고 있다.

최근 이마트에 따르면 간편 가정식 자체브랜드(PB)인 ‘피코크’ 제수 음식의 추석 전 일주일간 매출을 살펴본 결과 2014년 4억5천만원에서 지난해 12억4천만원으로 3년간 3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 매출은 전년 대비 약 61% 늘어난 2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이마트 측은 내다봤다.

명절에 대한 인식이 차례를 지내는 날보다는 가족들끼리 모이는 휴식의 의미가 더욱 커지면서 간편하게 제수 음식을 마련하고자 하는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게 유통업계의 분석이다.

이런 신풍속도에서 더 나아가 아예 차례를 생략하는 가정도 적지 않다.

인천에 사는 주부 이모(59)씨는 3년 전부터 남편의 제안에 따라 명절 차례는 지내지 않고 연휴 전에 산소에 가서 간단하게 성묘만 한다.

명절 당일 서울에 사는 자녀들이 오면 다 함께 외식하러 나가면서 명절 음식을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

큰아들이 좋아하는 부침개와 송편은 인터넷 명절 음식 업체를 통해 2인분 정도만 주문해서 먹는다.

이씨는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동서네와 모여 외식을 하고 과거 음식을 준비하던 시간에 제대로 쉴 수 있다”며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해서 조상을 섬기는 마음이 없어진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충주에 사는 김모(43)씨 가족은 이번 추석에 형제들끼리 각자 자신 있는 음식을 준비해 와 나눠 먹는 것으로 차례를 대신하기로 했다.

김씨는 “기름진 차례 음식은 들이는 공에 비해 남아 버리기 일쑤라 차라리 좋아하는 음식을 해먹는 게 낫겠다 싶어 내린 결정”이라며 “차례는 북어포, 과일만 간단히 챙겨 성묘로 대신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온라인 쇼핑업체 티몬이 추석을 앞두고 30∼40대 남녀 각 250명, 총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이 38.8%나 됐다.

송유진 동아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세대에 따라 변화를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갈등도 있을 수 있겠지만 반드시 하나의 방식으로만 명절을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서서히 바뀌고 다양한 방식이 인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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