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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5. 조선 칠현 배향한 문경 근암서원

문경을 대표하는 일곱 성현들의 삶과 정신이 오롯이…

황진호 기자   |   등록일 2018.09.2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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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근암서원은 1665년 지방유림의 공의로 홍언충(洪彦忠)과 이덕형(李德馨)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1868년 9월 유림에 의해 복원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사진은 근암서원 전경
서원의 배향인물이 대부분 한두 분을 모신 데 비해 문경의 근암서원은 무려 일곱분을 배향하고 있다.

그만큼 문경지역에 인물이 많았다는 간접적인 증거도 되고, 다시 말하면 본받을 만한 성현이 많았다는 뜻도 될 것이다.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에 있는 근암서원은 2011년 새롭게 복설되기 전까지 서원 본래의 건축물을 온전히 보전하고 있지는 않았다.

전국에 남아있는 700여 개의 서원이 대부분 제향기능과 강학기능 중 제향기능만 힘겹게 지켜내고 있으며 그나마 여력이 있는 서원조차도 강학기능의 전통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근암서원 강당 편액
근암서원 1544년(중종 39년)에 근암서당으로 창건, 1653년(효종 4년) 사림에서 우암 홍충언 선생을 배향하는 사당 건립을 상주목사에게 청원한 이래 현종 10년에는 한흠 이덕형 선생을, 숙종28년에는 사담 김홍민, 목재 홍여하 선생을추가호 배향했다.

정조 10년에는 활재 이구, 식산 이만부, 청대 권상일 선생을 차례차례 배향했다.

근암서원도 다른 서원과 마찬가지로 고종 5년 서원 철폐령으로 안타깝게 훼철됐다.

1982년 훼철된 서원을 후손들과 유림이 힘을 합쳐 사당과 강당을 준공하고 봉안 고유제를 지냈다.
입구 누각인 누문지원루. 근암서원의 대문 역할을 하면서 2층으로 된 전통건축물로 옛 선비의 정신을 느끼게 한다.
이후 유림 후손이 관리사에 거주하면서 사당과 강당 등 근암서원을 관리하고 보존하였으나,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늘 지역유림들의 반듯한 서원 복원에 대한 염원이 날로 커져갔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지역 유림의 근암서원에 대한 복원 건의가 문경시에 지속적으로 전달이 되었으며 이후 언론에서도 지역에 정신적 역할을 해 줄 서원 건립에 대한 의지를 함께 노력했다.

서원건립에 대한 물꼬는 문경시 유림단체협의회에서 문경시 전체 유림의 뜻을 시측에 전달함으로써 시작이 되었으며, 곧바로 근암서원중건추진위원회도 곧바로 발족했다.

이때 근암서원에 보관 중이던 목판과 관련 일괄유물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77호로 지정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서원복원이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총 30억원의 예산으로 사당, 전사청, 강당, 동재, 서재, 루문, 관리사 등 모두 10동의 건물을 중건했으며, 현판까지도 모두 옛 기록을 살펴 모두 새롭게 복원했다. 이곳의 유물은 모두 843점으로서 서원에 배향된 인물 중 목재 홍여하, 우암 홍언충, 청대 권상일의 문집목판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청대 권상일의 교지, 첩지, 영지가 70여 점 있다. 이외에 청대 선생이 평생을 수집한 서책과 기록물이 많이 있으며, 이 중 퇴계선생 친필, 청대문집, 어제어필 등은 매우 귀한 사료라 할 수 있다.

◇근암서원 배향인물

△우암 홍언충(洪彦忠 1473(성종4)~1508(중종3))

호는 우암, 본관은 부계이고 홍귀달의 아들이다. 1495년(연산군1)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그해에 증광문과에 급제했다. 1498년 사가독서 하였으며 1503년에 홍문관 교리가 되고, 갑자사화에 연계되어 해도로 유배되고 중종반정으로 풀려났으나 이후 벼슬을 하진 않았다.

△한음 이덕형(李德馨 1561(명종16)~1613(광해군5))

호는 한음, 쌍송이며 본관은 광주로 이민성의 아들이다. 영의정 이산해의 사위로 어린 나이에 양사언과 막역한 사이였다. 1580년 별시문과급제, 승문원에 보직되고 이어 박사, 대사간, 대사성,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의 사신과 화진을 교섭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후 선조를 호종하고, 청원사로 명나라에 건너가 원병을 요청하여 성공하였다. 이후 한성부판윤, 사도 도체찰사, 영의정을 지냈다.

△사담 김홍민(金弘敏 1540(중종35)~1594(선조27))

본관은 상산이고 김범의 아들이다. 1570년 문과에 급제하고 이조좌랑, 사인이 되고 1590년 전한이 되었다. 임란때 의병을 규합하여 충보군을 편성하여 공을 세웠다.

△목재 홍여하(洪汝河 1621(광해군13)~1678(숙종4))

본관은 부계이며 홍호의 아들이다. 1654년 진사로 식년문과에 급제, 검열, 설서, 전적, 정언 등을 지냈다. 경연에서는 시와 주례등을 강학하였으며, 1658년 경성판관으로 재임 시에는 부세를 줄이고 학교를 세워 교육을 일으켰다.

△활재 이 구(李구 1613(광해군5)~1654(효종5))

본관은 전주로 효령대군의 8세손. 칠봉 황시간의 외손으로 류직의 문인이다. 홍호, 권구 등과 교유하였으며, 성리설에 있어서는 이기이원론을 따랐으며, 퇴계의 문하중 병파인 류성룡을 학통으로 이이와 성혼의 문묘종사가 추진될 때, 류직 등 영남 유생 900여명이 반대소를 올릴 때 반대소를 지어 올렸다.

△식산 이만부(李萬敷 1664(현종5)~1732(영조8))

본관은 연안으로 이옥의 아들이다. 누대로 서울에 살다가 상주로 이거 하였으며 일찍이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 매진했다.

△청대 권상일(權相一 1679(숙종5)~1759(영조35))

본관은 안동이고 권구의 증손이며, 권심의 아들이다. 이구와 이재, 이만부의 학풍을 존숭하였으며, 퇴계의 사칠론에 대하여는 이와 기를 완전히 분리하여, 이는 자연지성이 되고, 기는 기질지성이 된다고 하였다. 1710년 증광문과에 급제,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홍문관부제학, 한성좌윤, 지중추부사, 대사헌 등을 역임하고 80세에 기로소에 들었다.

지난 2011년 근암서원 신축향사 많은 유림들이 참석했다.
문경 근암서원은 가장 뒤쪽에 있는 제향공간인 사당, 경현사를 비롯해 제수공간인 전사청 ,사당 진입문인 내삼문, 학습공간인 근암서원 그리고 기숙공간인 유의재와 욕인재, 입구 누각인 누문 지원루로 구성돼 있다.근암서원의 대문 역할을 하면서 2층으로 된 전통건축물로 화려한 단청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옛 선비들의 고결함이나 청렴함을 느끼게 하며 그 모습이 사뭇 근엄해 옛 선비의 정신을 느끼게 한다.
지역 유림들이 근암서원 향사에 참가해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누문 지원루를 통과하면 강학, 학습공간인 근암서원이 근엄한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내부에는 홍교당과 전교당이 있다. 그리고 근암서원 앞쪽 좌우측에는 유생들이 숙식하는 서재 유의재와 동재 욕인재가 자리를 잡고 있다.

서재 유의재 내부는 깔끔하게 관리가 잘 돼 있어 현재의 숙박업소를 보는 듯하다.

그리고 각각의 방에는 유생들이 기숙을 하면서 필요한 이불 등 각종 침구류들이 갖추어져 있다.

이곳 서원의 숙박시설과 일반적인 숙박업소의 시설과 다른 점은 방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대강당 뒤쪽에 있는 서당으로 가다 보면 담 밑 공간에는 다양한 석재유물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어 3개의 문이 달린 사당의 진입문인 내삼문은 이르게 되고 이곳 3개의 문은 각각 출입하는 사람의 신분이 달랐고 한다. 이 내삼문을 통과하면 조선시대 7현을 배향하는 경현사가 나오고 그 앞쪽에는 제례를 올릴 때 필요한 제수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근암서원의 복원은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많은 의미와 교훈을 주고 있다. 문경지역이라 함은 원래 현재의 문경읍 지역과 마성면 지역에 해당하며, 동로면과 산북면 일부는 예천군에, 점촌은 함창읍에, 영순지역 일부는 용궁면에, 그 외 나머지는 모두 상주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그래서인지 1990년대 후반에 출간된 ‘상주서원지’에 근암서원이 상주의 서원으로 실려 있을 정도로 문경지역과 서원문화는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근암서원이 복원된 후 서원에서 관내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출사동이 선비문화체험교실, 인문학 아카데미, 한자왕 선발대회 등을 통한 프로그램 운영되면서 전통문화에 대한 가치관 확립에 많은 역할을 담당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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