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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50년] 20. 포항제철, 4반세기 대역사의 완성과 박태준의 퇴진

25년 만에 '포항제철 신화' 창조…'잘 사는 나라' 건설 매진

이한웅 작가·콘텐츠연구소 상상 대표   |   등록일 2018.09.3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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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반세기종합준공(1992)
1)대한민국 철강 4반세기 대장정의 완성

△1968년 4월 1일 포항제철 창립. △1970년 4월 1일 포항1기 종합준공. △1976년 5월 31일 포항2기 종합준공. △1978년 12월 8일 포항3기 종합준공. △1981년 2월 8일 포항4기 종합준공 (조강연산 850만톤 체제) △1987년 5월 7일 광양1기 종합준공. △1988년 7월 12일 광양2기 종합준공. △1990년 12월 4일 광양3기 종합준공. △1992년 10월 2일 4반세기 대역사 종합준공(조강연산 2100만톤 체제)

4반세기 대역사 종합준공식 메인 사진(1992.10.2)
실로 숨 가쁜 여정이었다.

1992년 10월 2일. 광양종합운동장에서는 4반세기에 걸친 포항제철의 건설 여정을 마무리하는 종합준공식이 열렸다. 포항 영일만의 모래벌판에서 첫 삽을 뜨기 시작한 후 포항에서 4개의 용광로 준공하고 다시 광양에서 4개의 용광로를 건설해 가동하면서 1968년 창업이래 4반세기에 걸친 제철소건설의 역사를 마무리 지었다.
1992년 9월 25 광양4고로 화입식.
광양4기 설비 준공식을 겸한 포항제철 4반세기 역사 종합준공식에는 노태우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인사, 그레그(Donald Gregg) 주한 미국사를 비롯한 외교사절, 박태준 회장 및 임직원, 설비공급사 및 시공업체대표, 각국 철강업계 대표 및 재계인사, 국내외취재진, 직원가족 및 지역주민 등 1만 2000여 명이 참석했다.
포스코역사박물관 자료
이날 노태우 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자본ㆍ기술ㆍ경험이 제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여 4반세기 만에 연간 2100만 톤의 생산능력을 지닌 세계 3위의 제철회사로 성장한 포항제철의 위업은 세계철강사에 길이 빛날 금자탑이 될 것”이라며 ‘포항제철의 신화’를 창조한 자랑스러운 전통을 이어 포항제철을 21세기 세계최고기업으로 이끌어 줄 것을 당부했다.
포항제철 4반세기 대역사완공 기념화폐.
박태준 회장은 기념사에서 “회사의 4반세기는 바로 선진국에 대한 후진국의 일대 추격이고, 인간 스스로 능력한계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5000년 동안 쌓아온 우리 민족의 체념과 패배의식에 일대 분발의 기름을 붓는 국민정신의 시험장이었다”고 역설했다.

이처럼 포항제철의 4반세기 역사 종합준공에 대한 의의는 자못 컸다.

포항제철의 지속적인 설비확장과 이에 따른 철강재 공급 확대에 힘입어 국내 철강수요산업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급성장할 수 있었다.

‘최대생산, 저가판매 정책’은 국내 자동차, 조선, 전자, 컨테이너 등 수요산업이 세계 10위권으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만약 포항제철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1991년 기준 연간 2720만 톤에 이르는 철강재를 수입에 의존하게 되어 막대한 외화를 지출해야만 한다.
포항제철 4반세기 대역사완공 기념담배.
포항제철 4반세기 완성으로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철강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하게 되었고 창립 이후 25년만에 이룩한 초고속 성장은 세계철강역사상 유례가 없는 가장 최단기간에 이룩한 것으로 국내 및 해외철강업계는 이것을 큰 심화(神話)로 받아들였다. 또 포항제철의 건설 대장정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기폭제가 되었음은 물론, 포항과 광양시민은 물론 국민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고취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철강 2100만톤 시대개막은 최적 규모의 경제성실현, 양 제철소 상호보완체제로 효율성 극대화, 고부가가치강 생산기반 확충, 국민경제 발전 촉진이라는 큰 의의를 지녔다. 포항제철소는 고급강위주의 다품종소량생산에 주력하고 광양제철소는 열연코일 및 냉연코일 위주의 소품종 대량생산에 주력하는 등 각 제철소의 특성에 맞는 제품구성을 기함으로써 인력, 비용 등의 생산원가 절감과 함께 설비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2) 박태준의 임무완수 보고와 퇴진
1992년 10월3일 박태준의 임무완수 보고.
포항제철, 4반세기 대역사의 완성이 이뤄진 1992년 10월 2일 이후 포항제철 안팎의 시계는 초고속으로 돌기 시작했고 창사 이래 최대의 소용돌이가 닥친다. 종합 준공 다음날인 10월 3일, 박태준 회장은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 넥타이, 검은 양복 차림으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박정희 대통령 묘 앞에 선다.

엄격히 말하면 포항제철 4반세기 대역사의 출발점은 박태준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대한민국 첫 종합제철 사령탑을 맡으라는 特命을 받은 1967년 10월이다. 그래서 1992년 10월 2일이 꼭 25년, 4반세기가 된다.

그래서 박태준은 종합제철의 경영자를 맡은 지 25년 만에 조강생산 2천100만톤 체제를 완공한 후 한지 두루마리 뭉치에 자필 붓글씨로 적은 두툼한 보고서를 들고 동작동 박 대통령의 국립묘지를 찾아간 것이다. “각하, 불초 박태준, 각하의 명을 받은 지 25년 만에 포철 건설의 대역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삼가 각하의 영전에 보고 드립니다. … 일찍이 각하께서 분부하신 대임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박태준 회장은 생전에 박 대통령에게 임무 완수를 보고한 이 날(1992년 10월 3일)이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었다고 회고하곤 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박정희 대통령 묘소 참배문) <요약>

불초(不肖) 박태준, 각하의 명을 받은 지 25년만에 포항제철 건설의 대역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영전에 보고를 드립니다.

포항제철은 ‘빈곤타파와 경제부흥’을 위해서는 일관제철소 건설이 필수적이라는 각하의 의지에 의해 탄생되었습니다. 그 포항제철이 바로 어제, 포항, 광양의 양대 제철소에 조강생산 2,100만톤 체제의 완공을 끝으로 4반세기에 걸친 대장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는 불모지에서 용광로 구경조차 해본 일이 없는 39명의 창업요원을 이끌고 포항 모래사장을 밟았을 때는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포항제철소 4기 완공을 1년여 앞두고 각하께서 유명을 달리하셨을 때는 ‘2,100만톤 철강생산국’의 꿈이 이렇게 끝나버리는가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철강입국(鐵鋼立國)’의 유지를 받들어 흔들림 없이 오늘까지 일해 왔습니다. 각하! 일찍이 분부하셨고, 또 다짐 드린 대로 저는 이제 대임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혼령이라도 계신다면, 불초 박태준이 결코 나태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25년 전의 그 마음으로 돌아가 ‘잘 사는 나라’ 건설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굳게 붙들어 주시옵소서. 부디 안면(安眠)하소서!

1992년 10월 3일

불초(不肖) 태준 올림

포항제철 직원들의 박태준회장 사퇴 반대
박태준 회장은 이 임무완수 보고 직후, 포스코 회장직을 물러나며 그의 분신과도 같은 포항제철을 떠나 홀연히 야인으로 돌아가게 된다.

여당이던 민자당 최고위원을 맡고 있었던 그에게는 3당 통합과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 후보 선출 등 숨 가쁜 정치 격랑기에 정계와 포항제철을 모두 떠나야 하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 대통령에게 임무완수 보고를 하고 온 날, 박태준은 민자당 최고위원과 김영삼 대통령 후보 선대위원장, 포항제철 회장 등 모두 3장의 사표를 함께 썼다.
포항제철 직원들의 박태준회장 사퇴 반대.
박정희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한 후인 10월 5일 오전 11시 박태준 회장은 이사회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이날 오후 3시 황경로 부회장 주재로 모든 이사가 참석한 가운데 긴급 이사회 열린다. 이사회는 박 회장의 사퇴 철회를 건의했고 이어서 전 임직원과 직원가족들도 사의를 철회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하는 등 그의 사퇴 의사를 만류하는 분위기가 고조됐다. 그러나 박태준 회장은 “충정은 이해하지만 때가 되면 진퇴를 분명히 해야한다”며 사의를 굽히지 않았다. 결국 포항제철주식회사 이사회는 10월 8일 오전 박 회장의 사의철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사의를 받아들이는 대신 명예회장으로 추대한다.
1992년10월 황경로 2대회장 체제 출범.
마침내 10월 9일 열린 이사회는 박태준 회장을 첫 명예회장으로 선임하고, 황경로 부회장을 대표이사회장, 정명식 사장을 대표이사 부회장, 박득표 부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각각 선임한다.

이처럼 1992년 10월 초, 포항제철에서는 여러 가지 정치적 이유로 창사 이래 가장 큰 태풍이 휘몰아쳤으며 창업 이후 4반세기 동안 외풍을 막아 주었던 박태준이 떠나면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파란만장의 세파를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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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웅<작가·콘텐츠연구소 상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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