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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장자에는 여러 편의 우화가 등장합니다. 널리 알려진 것에 포정(庖丁), 윤편(輪扁), 도척(盜跖), 목계(木鷄), 산목(山木), 설검(說劍)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비유의 글쓰기로 주로 완생(完生·좌절 없는 삶)의 삶을 묘사하고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장자 식 표현에 따르면 그것들은 모두 ‘양생(養生)의 도’를 밝히고 있는 것들입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우화는 목계(木鷄·싸움닭 키우는 법)입니다. 장자 외편 ‘달생(達生)’에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기성자(紀渻子)가 왕을 위해 싸움닭을 키웠다. 열흘이 되어 왕이 물었다. “닭이 이제 싸울 수 있겠나?” “아직 안 됩니다. 지금은 공연히 허세를 부리며 제 기운만 믿고 있습니다”하고 기성자는 대답했다. 또 열흘이 지나고서 왕이 물었다. 기성자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안 됩니다. 다른 닭의 울음소리나 모습에 당장에라도 덤벼들 태세입니다.” 또 열흘이 지났다. 왕이 묻자 기성자가 대답했다. “아직 안 됩니다. 상대를 노려보며 성을 냅니다” 다시 열흘이 지났을 때 왕이 묻자 비로소 기성자가 말했다. “이젠 됐습니다. 상대가 울음소리를 내도 태도에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나무로 만든 닭 같습니다. 그 덕이 온전해진 것입니다. 다른 닭들이 감히 대들지 못하고 도망쳐 버립니다” ‘안동림 역주 ‘莊子’’

‘목계(木鷄)의 경지에 오른 싸움닭’이 우의(寓意)하는 것은 완생의 경지입니다. 허세를 부리고, 성급하게 반응하고, 공격성을 다스리지 못하는 단계를 넘어서야만 얻을 수 있는 태산부동(泰山不動)의 자세를 강조합니다. 그런 불패의 경지를 인생에 유추해서 완생의 삶을 도모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사실 이러한 주지(主旨)는 천지자연(天地自然)에 순응하여 모든 인지(人智)를 벗어난 무위의 삶을 영위하라는 장자의 일관된 가르침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무위(無爲) 그 자체가 아니라 유위(有爲)의 지극한 경지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단하게 노력해서 터득한 무위(無爲)의 경지로 인간세가 강요하는 유위(有爲)의 유혹과 한계를 넘어서라는 권유는 누가 봐도 장자의 무위자연설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 관계로 이 부분은 장자 본인의 기술(記述)이 아니라 후일 후학(後學)들에 의해서 추가된 내용으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 우화에 따르면 완생의 가장 큰 장애물은 조급증입니다. 제 기억을 살펴보더라도 실패한 일들은 언제나 생각이 먼저 도달해 있었습니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한다면, 성급하다는 것, 늘 먼저 도착해 있다는 것은 욕망 과잉이거나 보상 결핍일 공산이 큰 것입니다. 나의 불편을 확대하고 나의 불민(不敏)을 축소한 결과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부득불 신경증일 수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결국, 장자의 목계 이야기가 전달하는 교훈은 “생각이 먼저 도착해 있는 상황을 벗어나라”, 그 한 줄로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 집값에 대해서 말들이 많습니다. ‘똑똑한 놈 한 채’, ‘서울집 가진 1등 시민 서울집 없는 2등 시민’, ‘강남 인근 그린벨트 해제’, ‘서울 중심지역 모든 가용한 땅에 임대주택 건설’ 등등 온갖 불평과 대책들이 난무합니다. 거의 사문난적(斯文亂賊·못된 언행으로 나라를 어지럽히는 자) 수준입니다. 그중에서도 “서울 집값이 폭등한 것은 현 정부가 북한에 퍼주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모종의 술책이다”라는 유언비어가 가장 압권입니다. 욕망 과잉이나 보상결핍의 신경증을 자극해서 자신들만의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질 낮은 획책임이 분명합니다. 목계의 교훈이 절실한 우리 민족의 시절 운세를 고려한다면 정말이지 용납할 수 없는 사악한 유언비어입니다. 불쌍하고 미운, 싸움에 중독된 자들의 미생(迷生)일 뿐입니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 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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