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예술가’로 불리는 영국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Banksy)가 사고를 쳤다. 지난 5일(현지 시간) 런던의 소더비 경매장. 정체를 숨긴 채 활동하는 뱅크시의 작품 ‘풍선과 소녀’가 104만 파운드(우리 돈 15억 원)에 낙찰이 확정되는 순간, 그림이 액자 밑으로 흘러내리며 잘려나갔다.

미술사의 새로운 사건을 만든 범인은 다름 아닌 그림의 주인 뱅크시였다. 다음 날 뱅크시는 액자에 파쇄기를 설치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몇 년 전 그림이 경매에 나갈 것을 대비해 액자 안에 몰래 파쇄기를 설치했다”면서 ‘파쇄하려는 충동은 곧 창조의 충동’이라는 피카소의 말을 인용했다.

뱅크시는 미술 작품이 터무니없는 가격에 거래되는 경매 현장을 비꼰 적이 있다. 작품에다 “난 정말 너 같은 멍청이가 이런 쓰레기를 진짜 살 줄 몰랐다”고 써 놓았던 것. 뱅크시는 기발한 유머 감각과 신랄한 현실 비판이 담긴 그래피티로 유명하다. 그는 미술계 뿐 아니라 이 시대의 허영과 물신주의를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풍선’ 하면 생각 나는 인물이 또 한 사람 있다. 풍선을 불어 나무에 붙여두고 ‘예술가의 숨결’이라 했던 ‘똥’의 예술가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i)다. 이탈리아 작가 만초니(1933~1963)는 1961년 5월 ‘예술가의 똥’이라는 제목을 달아 90개의 통조림을 전시했다. 깡통에는 만초니의 서명과 함께 ‘예술가의 똥, 정량 30g, 신선하게 제작됨, 1961년 5월 생산돼 깡통에 넣어짐’이라는 문구가 영어와 이탈리아어, 불어, 독어로 적혀있다. 이 작품은 1961년 당시 금과 같은 가격이 매겨졌다. 30g의 똥과 30g의 금을 등치 시킨 것이다. 지난 2008년 캔 하나가 경매장에서 9만7250파운드(약 1억7000만 원)에 낙찰됐다니 똥이 다이아몬드가 된 셈이다.

1917년 ‘앙데팡당’전에 ‘샘’이란 제목으로 남자의 소변기를 출품, 예술로 ‘조롱하기’의 원조로 불리는 마르셀 뒤샹이나 만초니, 뱅크시는 예술의 고정된 형식성을 타파하고, 인간의 경박함과 허영심, 물신주의를 비판하는 예술사적 사건을 만든 혁명가들이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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