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녁에 박힌 화살이 꼬리를 흔들고 있다

찬 두부 속을 파고 들어가는 뜨거운 미꾸라지처럼

머리통을 과녁판에 묻고 온몸을 흔들고 있다

여전히 멈추지 않은 속도로 나무판 두께를 밀고 있다

과녁을 뚫고 날아가려고 꼬리가 몸통을 밀고 있다

더 나아가지 않는 속도를 나무 속에 욱여넣고 있다

긴 포물선의 길을 깜깜한 나무 속에 들이붓고 있다

속도는 흐르고 흘러 녹이 다 슬었는데

과녁판에는 아직도 화살이 퍼덕거려서

출렁이는 파문이 나이테를 밀며 퍼져나가고 있다





<감상> 자신이 화살이라고 생각해 보자. 과녁에 박히고도 멈추지 않는 속도로 미꾸라지처럼 흔드는 온몸, 과녁을 뚫고 날아가려고 몸통을 미는 꼬리, 죽은 속도를 나무속에다 욱여넣고 포물선의 길을 들이붓는 욕망들! 속도가 녹이 슬었음에도 화살처럼 우리는 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멈추는 법을 알지 못하니 자신의 욕망은 출렁이는 파문을 안고 퍼져 나간다. 마침내 이 헛된 것들도 멈출 것이므로 몸에 지닌 속도의 세기만큼, 걸어온 길의 길이만큼 절망은 요동치고 말 것이다. 인간이란 더 큰 속도로 또 다른 과녁을 향해 나아가고 싶지만, 죽음 앞에선 멈출 수밖에 없는 존재일 뿐. <시인 손창기>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