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영웅 아이네이스는 여왕 디도와 사랑에 빠졌다. 아이네이스가 동포를 위해 디도 곁을 떠나려 하자 디도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만약 내가 내 인생을 나 자신의 선택에 따라 살아가고 나 자신의 뜻에 따라 풀어가는 것을 운명이 허용한다면 내 첫 번째 관심사는 트로이에 살아남은 내 동포들을 돌보는 것입니다”면서 아이네이스는 여왕 곁을 떠났다.

트로이의 동포를 생각해 여왕의 품을 뿌리친 아이네이스의 이타심은 미국의 세계최대 자산운용회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나라 GDP 4배가 넘는 6조2800억 달러를 굴리는 회사의 총수 래리 핑크는 자신의 성공을 독식하기 보다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다짐이 경영자들에게 자극제가 된다.

그는 매년 초 각 기업 CEO들에게 공개 편지를 쓴다. “재무적 성과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지 보여 줘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가 이렇게 촉구하는 것은 양극화 등 사회문제를 기업과 무관한 것으로 내버려 두다가는 기업의 존립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래리 핑크는 주주 뿐만 아니라 종업원, 고객, 지역사회 구성원 등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도움을 줘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목적의식이 없다면 어떤 기업도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고 지속 가능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사회문제를 모르는 척 하다가는 ‘기업이 주된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영업허가를 잃을 수 있다’는 경고다. ‘포춘’지는 그의 용기 있는 ‘사회적 귀환’을 높이 평가, 2018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50인 중 8위로 선정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책임을 기업이 회피하지 않고 기꺼이 떠안는 래리 핑크의 기업가 정신이 숭고하다.

세계 최고 부자인 미국 ‘아마존’ 창업자이며 최고경영자 제프 베이조스가 “후손들이 우리보다 나은 삶을 살지 못한다면 정말 잘못된 일”이라며 20억 달러(2조2400억 원)를 기부, 자선재단 ‘데이 원(DayOne)’을 세운다고 한다. 개인 성취에 머무르지 않고 더 큰 사명에 눈떠 세상의 고통에 눈감지 않는 사람과 기업이야말로 진정한 현대의 영웅이다. 이런 영웅이 많은 나라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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