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자율학습 시간
그 녀석의 책상을 걷어찼다
아무것도 아닌 줄 알고 한 번 걷어찼을 뿐인데
텅 빈 소리가 오랫동안 밤공기를 가른다
텅 빈 그림자에 피가 얼룩진다
책상에 엎드려 매일 자는 줄 알았는데
깊은 침묵으로 밤마다 피 흘리고 있었구나
하얀 어둠 속에 자신의 그림자 새기며
아스피린처럼 깨어 있는 아이
어둠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는 아이
무심코 한 번 걷어찼을 뿐인데
신음소리도 내지 않고 너무 아픈 소리를 낸다
이제 달과 구름도 새기지 못하는 너,
아무도 오지 않는 자기의 어둠 속을 바라보며
오래 묵은 기억을 부여잡고 있었구나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교실 형광등도
진저리를 치고 있다





<감상>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잠만 자는 아이는 공부하지 않는 줄로만 알고 교사이자 시인은 책상을 걷어찼습니다. 그런데 그 녀석은 남모르는 상처를 안고 있었습니다. 아프다고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기에, 달과 구름도 새기지 못할 어둠을 가졌기에, 오래 묵은 아픔(기억)을 지녔기에 혼자 깊은 침묵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오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는 교실의 형광등도, 후회하는 선생님도 진저리 같은 전율을 안고 있습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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