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줄지어 하늘에 사람 人자 쓰듯 갑니다.

여드레 반달이 구름 사이로 발길을 재촉하네요. 하루를 살아도 사람같이 살아야 …… 혼잣말 점드락 피를 말립니다.

쇳내나는 작두샘에 한 바가지 마중물을 붓듯 마을버스 정류장에 나섭니다.
어둠 속에 놓쳐버린 제 그림자 찾느라 여태 밥도 못한 걸까요?

허청허청 돌아올 어깨에 작대기 받쳐주렵니다. 사람 人자 쓰듯, 그래요 찬 손등 위에 손 포개렵니다.

무서리 칠 것 같은 하늘에 기러기 떼가 길을 묻습니다. 묻어둔 밥주발 복주개 열어 줘야 할 식구들, 감감하네요.

가을밤이 섬닷합니다.





<감상> 하늘엔 기러기가 사람 인(人)자 쓰듯 서로 인정을 담아야 수만 리 길을 함께 갈 수 있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사람같이 살아야 한다는 말, 점드락(‘저물도록’의 전남방언) 저릿하게 다가옵니다. 지상에서도 사람 인(人)자처럼 서로 위로해주는 인정이 있어야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운 이를 마중 나가는 것,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묻는 것, 오지 않을 식구를 위해 복주개(주발뚜껑)를 열어줘야 하는 일들, 이 가을밤조차 그렇게 어설프고 썰렁해서 어찌할거나? 전라도 말로 ‘섬닷하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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