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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규 문학평론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재물이나 권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지식이다. 왜 지식이 재물이나 권력보다 중요한가 지식은 재물도 권력도 되지만 재물이 지식이 될 수도 권력이 지식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지식이 더 소중하다.

특히 대인관계에선 지식은 인격의 척도가 된다. 그런 지식을 과시해서도 안 되지만 장식품이 돼서는 안 된다. 특히 주의할 것은 지식이 풍부할수록 겸허해야 한다. 지식만 믿고 막무가내로 자신을 내세우면 안 된다. 자기 의견을 말할 때도 단언하건대 또는 결단코 그렇게 한마디로 잘라 말해서는 안 된다. 지식이 풍부하다고 남 앞에서 지나치게 자만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요즘 자기 지식만 믿고 거들먹거리는 그런 사람들이 부쩍 기승을 부린다. 특히 주의할 것은 남이 하는 말 진의도 정확히 깨우치지 못하고 자기주장만 고집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조선 세종 때 맹사성이 열아홉 살에 장원급제 스무 살에 경기도 파주 원님으로 부임 관내 한 무명선사를 찾아 이 고을을 다스리는데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을 가르쳐 주십사하고 부탁했다. 그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 뒤였다. 선사 왈 “간단합니다. 나쁜 일은 피하고 선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면 됩니다” 그러자 맹사성이 나이가 어리다고 자신을 무시한 것 같아 화가 치밀어 “선사! 그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데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거들먹거리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선사가 “원님, 진정하시고 차나 한잔합시다” 라며 붙잡았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선사가 찻잔에 차를 따르는데 차가 잔을 넘쳐 방바닥으로 쏟아졌다. 맹사성이 “찻물이 잔을 넘쳐 방바닥이 젖습니다” 그 말을 듣고도 선사는 계속 찻잔에 차를 따르며 하는 말이 “찻물이 찻잔을 넘쳐 방바닥이 젖는 것은 알면서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신단 말이요” 혼잣말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 맹사성이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다 방 문지방에 머리를 부딪쳤다. 맹사성이 머리가 띵하여 서 있는 데 선사가 껄껄 웃으며 “원님께서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일이 없을 텐데…”

맹사성이 자신의 지식만 믿고, 파주지방 원님이라는 것만 믿고, 거들먹거리다 무명선사에게 크게 망신을 샀다. 무명선사가 하는 말을 듣고 자신이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 겸손을 배웠으며 명랑하고 온유한 성격을 갖추고 효를 깨우쳤다. 그는 관료로서 강직하고 청렴을 생활화하여 문장가로서 청백리로서 명재상으로 남다른 인물이 됐다.

사람에게는 지식, 재물, 권력도 중요하지만 사람 됨됨이가 더욱 중요하다. 맹사성처럼 남다른 지식과 권력을 가지고도 잘 못된 생각으로 거들먹거리다가 돌아오는 건 망신이요 불신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풍부한 지식이 재물이 권력이 자칫 꼴불견이라는 불명예를 불러올 수 있다.

1960년대 산업화 이후 삶의 질이 개선되자 부모덕택으로 고등교육을 받아 다양한 지식에 권력까지 거머쥐자 다른 사람의 의견 따위 무시 자기 생각대로 밀어붙이는 그런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식과 권력을 갖지 않은 것만도 못하다.

보다 많은 재물을 갖고 보다 높은 권력의 자리에 있을수록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듣고, 보다 많은 것을 보고, 판단을 심중히 해야 한다. 남 다른 권력을 가졌다고 많은 재물을 가졌다고 거들먹거려선 안 된다. 거품 같은 권력이나 재물을 믿고 아집 그것 좋지만 그런 것 가질수록 다른 사람 의견 포용도 필요하다. 그게 진정한 지식인이 갖는 태도이자 지식이 갖는 가치이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 사람도 그래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좋은 두뇌에 많은 공부를 하고 높은 권력의 위치에 있으면서 아집에 파묻혀 막무가내인 짓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다. 지식과 권력을 내세워 거들먹거리는 그들 미안하지만 맹사성을 보고 배웠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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