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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천 최병국 고문헌 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김정은이 또 꼼수를 부렸다. 북미 고위급 회담을 이틀 앞두고 돌연 회담이 연기되었다. 어느 쪽에서 일방적으로 회담을 연기한 것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워싱턴의 외교가에서는 “북측이 회담 준비 부족을 이유로 연기를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 우세하다. 강경화 외무장관도 8일 국회에서 “북한 측이 연기를 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회담 날짜를 불과 3일 앞두고 북·미고위급 회담 일시와 장소를 공식 발표했었다. 이 같은 사정을 감안 할 때 김정은이 미국과 유엔의 대북 제재 해제를 먼저 해 줄 것을 지금까지 줄기차게 요구해 오다 미국 측의 반대가 완강하자 또 한번 회담을 연기하는 배수진을 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측으로서는 지금 동한기를 맞이하면서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 등 각종 물자가 부족해지고 있으며 군사용 석유 확보에도 비상이 걸려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북한 측으로서는 문재인 정부 쪽에 남북경협 등을 통한 지원을 받길 원하고 있으나 미국 측의 제재로 이 또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북미고위급 회담 연기로 내년 초에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트럼프와 김정은 회담도 안갯속에 묻혔으며 연말의 남북 정상회담도 불투명해졌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할 때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당초부터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초 김정은이 비핵화를 빌미로 국제사회에 트럼프와 동등하게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효과를 노렸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정은이 자신의 위상 상승 조건으로 내걸었던 비핵화가 자신의 발목을 잡는 우(愚)를 저질렀다. 이젠 김정은으로서는 자신의 입으로 말한 비핵화를 실행할 것이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될 시점에 가까이 와 있음을 알 것이다. 김정은으로서는 핵을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과 무력으로 맞서는 냉전으로 되돌아갈 것인지를 결단해야 될 절체절명의 순간에 다다르고 있다. 이번 북미고위급 회담의 돌연 연기도 이런 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 김정은은 미국의 핵 리스트 제출 요구에 대해 “북·미간 신뢰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핵물질, 무기, 운반 수단의 리스트를 신고하라는 것은 미국이 우리를 공격할 때 목표지점의 리스트를 제출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응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해왔다. 이런 사실을 볼 때 김정은이 비핵화 협상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밀고 당기기가 아니라 처음부터 ‘비핵화 의지’라는 것 자체가 없었을 가능성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미국 측으로서도 김정은의 이런 꼼수를 간파하고 회담 초기부터 줄기차게 비핵화를 위한 핵 리스트를 먼저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로서는 중간선거가 끝났기 때문에 북미회담에 목을 맬 이유도 없어지게 됐다. 미국 국민의 여론에 부합하기 위한 지금까지 해온 극적인 정치적 이벤트를 할 필요가 없어진 만큼 트럼프의 대북 비핵화 정책은 이제 북한 측이 제 발로 찾아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는 정책으로 바뀌어 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정은으로서는 당장에 해결해야 될 북핵제재가 풀리지 않은 한 갈수록 국내 경제사정은 핍박해지고 주민들의 민심 동요도 신경을 써야 될 시점에 이른 것이다. 김정은은 지난달 초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 후 19일간 잠적했다가 최근 공개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공개활동을 하면서 “적대 세력들이 우리를 굴복시키려고 악랄한 제재 책동에 광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이후 북한 매체들이 일제히 ‘자력갱생’을 강조하며 미국 측의 제재에 장기전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측은 한술 더 떠 “제재 완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핵과 경제의 병진 노선을 다시 추구할 수 있다”는 협박성 메시지까지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번 미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그동안 북·미 정상 간 ‘빅딜’방식의 협상에 극도의 불신을 나타내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뿐만 아니라 생화학무기까지 영구 폐기해야 한다며 강경한 목소리를 내어왔다. 이제 민주당은 북한의 아킬레스건인 인권 문제도 대북 테이블에 올리라고 주장하고 있어 김정은의 향후 대미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국제적인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유천 최병국 고문헌 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김선동 kingofsun@kyongbuk.com

인터넷경북일보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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