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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대상] 박시윤 수필 '울릉도사람들'

2018 제5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경북일보   |   등록일 2018.11.1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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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정作
배가 돌아온다. 행남등대, 그 길고도 먼 불빛을 따라 멀리서, 저 멀리서 고운 물결 위에 출렁대며 돌아온다. 만선을 기다리는 섬어미의 바람처럼, 깜깜하게 어둠이 들어앉은 저동 어판장을 향해 섬아비들이 힘차게 내달린다. 밤새 바다에 기댄 시간, 아비의 배는 만선의 꿈을 이루었을까.

항을 향해 내달리는 아비들을 쫓아 어느새 새벽이 물러가고 해가 달려와 왈칵 업힌다. 이제 바다의 시간은 고스란히 바다에 남겨두어야 한다. 헐빈한 배가 못내 아쉬워, 바다에 더 머문다 한들 무엇을 얻을까. 오늘 욕심을 접을 줄 알아야 내일 희망도 품을 수 있다는 것을 섬아비들은 잘 알고 있으리라.

아비는 밤새 바다가 내어준 것들을 상자 째 어판장 바닥에 내어놓는다. 경매가 붙을 것은 크기별로 분류되었고, 활어로 팔 것은 숨이 붙어있어 생동감 그 자체로 꿈틀댄다. 민낯으로 올라온 생물들이 날것으로 팔딱댄다. 살아있는 증거, 비로소 울릉도의 아침이 시작된다. 울릉도 오징어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유난히 맑고 투명하다. 햇볕 한줌 없는 밤중에 싱싱한 몸을 드러내고 올라오던 오징어의 생동감은 아비들의 마음까지 설레게 했다. 아비들은 밤새 바다와 삶을 이야기하고, 오징어와 함께 웃었다.

오늘은 얼마나 후한 금으로 하룻밤을 위로받을까. 경매사와 중도매인들 사이에 알아들을 수없는 손짓과 언어가 몇 차례 오고 가다 보면, 고요하던 어판장은 어느새 물이 오른다.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다. 경매사는 제각각의 호창(呼唱)으로 분위기를 잡아가며 낙찰자와 낙찰가격을 지목한다. 오징어잡이가 한창인 겨울철에는 항구 전체가 들썩거릴 만큼 활기가 넘친다. 두둑하게 금이 쳐지든, 적게 쳐지든 아비들의 하룻밤은 그렇게 어판장 한켠에서 화폐로 교환된다.

경매 소리 요란할 무렵, 칼 깨나 쓴다는 섬어미들이 어판장 귀퉁이에 쪼그려 앉는다. 물 때 슬어 거무스름한 칼 한 자루가 어미의 삶을 대신 말해주는 듯하다. 아무리 보아도 반짝거리지 않는 칼날, 손바닥에 꼭 쥔 작고 초라한 칼은 어미들의 고된 역사의 기록일 것이다. 손에 맞게 제조한 칼은 같은 것이 하나도 없을 만큼 제각각이다. 추울 때나 더울 때나 어미들의 자리는 바닷바람 불어오는 어판장 바닥이다. 비릿한 냄새, 축축한 바닥, 미끄덩거리는 오징어.

섬어미가 오징어 한 마리를 움켜잡는다. 미끄덩거리며 발버둥치는 오징어 배가 순식간에 ‘주욱’ 갈라진다. 재빠르게 먹물주머니를 뜯어내니, 붉고 투명하던 오징어 몸통은 종이처럼 펼쳐져 허연 속살을 드러낸다. 오징어 속을 누비던 작은 칼날이, 그제야 태양에 반사되어 반짝거린다. 칼은 오징어 다리 사이를 가르고 눈알 언저리를 슬쩍 누른다. 눈알 두 개가 ‘툭’ 튀어나오자, 이번에는 칼의 각을 몸 쪽으로 비스듬히 눕혀 앞으로 ‘쓰윽’ 민다. 순식간에 눈 알 두 개가 어판장 바닥으로 쏟아진다. 눈알은 쪼그려 앉은 어미들의 발 주변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오가는 사람들의 발에서 ‘툭툭’ 터지거나, 비린내를 맡고 날아온 괭이갈매기의 부리에서 사라진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평범한 일상이다. 눈알이 쓸모없이 어판장 바닥에 수를 더할 때마다 어미들의 손놀림은 더욱 물이 오른다. 물컹한 내장을 잡아 뜯고, 물 한 바가지 퍼붓고 나면 비로소 한 마리의 할복이 끝을 맺는다. 보고 또 보아도 지겹지 않고, 제아무리 빠른 손놀림을 자랑하며 따라 해 보아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기술 중의 기술이다. 할복, 섬사람들은 오징어를 손질하는 어미들의 칼질을 할복이라 한다.

어판장은 오로지 물 씻겨 가는 소리, 물 철벅이는 소리로만 가득하다. 한나절 허리 한 번 못 펴고 하는 일이지만 손을 놓을 수없는 일이다. 한 마리당 오십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할복 작업을 젊은이들은 오래전부터 등한시했다. 손목이 욱신거리고 쪼그려 앉은 무릎과 허리에 찬바람이 들고 골병이 들었다. 평생 비린내가 몸에 배고, 겨울 해풍에 손도 발도 꽁꽁 얼고 녹기를 반복했다. 진즉에 그만두었어야 하는 일이라며 수도 없이 한탄했다. 하지만 바다가 허락한 일이었고 죽을 때까지 손을 땔 수 없는 숙명의 일감이라는 걸 알기에 섬어미들은 어제도, 오늘도 어판장 귀퉁이에 자리를 잡는다.

왁자하던 경매도 막을 내리고, 할복도 끝이 났다. 할복이 끝난 오징어는 긴 꼬챙이에 스무 마리씩 꿰어져 덕장으로 옮겨져, 해풍에 꾸덕꾸덕 말라갈 것이다. 섬어미들도 하나, 둘 어판장을 빠져나간다. 서서히 자리바꿈을 하는 어둠과 밝음, 그 사이에 섬사람들의 시간이 흐른다. 서두르지 않고,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섬의 시간은 무료할 만큼 단조롭다.

해가 서쪽으로 저물어 갈 즈음, 섬아비들은 쪽잠을 깨워 다시 항으로 돌아와 바다로 갈 채비를 한다. 아비들의 배는 작거나 크다. 선수(船首)와 선수를 엮어 질서 있게 정박한 항은 언제나 예와 도가 깃들어 있다. 저마다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다르듯 작아서 기죽지 않고, 커서 거만하지 않은 아비들의 배포는 언제나 바다에 머문다. 서로 몸을 부비던 배들은 하나, 둘 항구를 빠져나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간을 읽고, 바다를 읽는다. 대낮보다 더 밝은 밤, 섬아비들의 밤은 어둠이 내리지 않는다. 낮이 낮이 되고, 밤이 낮이 되는 섬. 울릉도의 밤은 낮보다 더 환하다는 걸 울릉도에 몸을 기대고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 섬을 떠나 바다 위에서 또 다른 섬이 되는 아비들. 오늘은 또 바다 어느 즈음에서 하룻밤을 기댈까. 예순을 훌쩍 넘긴 섬아비의 밤은 평생, 멈추지 않는 바다 위의 출렁이는 섬으로 남는다.

먼 곳으로 사라져간 아비들, 칠흑의 밤중에 아비들은 저 먼 곳에서 태양처럼 출렁인다. 몸뚱어리는 평생 출렁이는 바다에 익숙해지고, 뭍에 서 있는 것보다 출렁이는 바다의 흐름이 더 평안하다 했다. 수평선 저 멀리서 환하게 빛나는 아비들. 해가 저문 자리에도, 달이 뜨는 자리에도 아비들은 섬의 시간을 잊고 또 다른 빛으로 환생하여 바다의 시간을 산다. 바다는 두발로 서는 곳이 아니라 마음으로 기대는 것이라는 걸 알기에 섬아비는 오늘 밤도 떠나온 섬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평생 마음을 기댄 바다에서 자신은 또 하나의 섬이고, 또 하나의 태양이라는 것을 아비들은 굳이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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