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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13. 예천군 호명면 노봉서원

죽음마저 초월한 충절…고고한 선비의 절개를 만나다

이상만 기자   |   등록일 2018.11.2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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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봉서원
경북 예천군 호명면 내신2리의 노봉서원은 조선 단종(재위 1452∼1468) 때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키다 순절한 죽림 권산해(1403∼1456)의 절의를 본받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권산해는 조선 전기의 의인(義人)이다. 세조 원년(1455)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두 임금 섬기기를 거부하며 낙향했다. 그 뒤 사육신과 더불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절했다.
노봉서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40호인 노봉서원은 정조 18년(1794)에 세웠으나, 고종 3년(1866)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고 1921년 지방 유림의 지원으로 다시 세웠다.

앞면 5칸·옆면 1칸 반 크기의 강당을 비롯하여 5동의 건물로 1곽을 이루고 있고, 죽림 권산해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노봉서원 정면
권산해(權山海·1403~1456)는 지보면 대죽리 한대(大竹) 마을 출신이다. 자는 덕보(德甫), 호는 죽림(竹林), 시호는 충민(忠愍), 본관은 안동이다. 권관(權寬)의 맏아들로, 단종 임금의 이모부이며, 좌의정 권진(權軫)의 제자다. 1440년(세종 22)에 창덕궁 녹사 및 주부에 천거되었으나 모두 거절하다 단종이 즉위한 후 1454년에 종부시 첨정(僉正)의 벼슬을 하였다.
노봉서원
1456년 단종이 임금 자리에서 쫓겨나고, 세조가 즉위하여 찰방 벼슬을 내렸으나 세조를 섬길 수 없다 하여 벼슬에서 물러났다. 성삼문 등 사육신과 더불어 단종을 다시 임금 자리에 앉히려다 사육신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의분을 못 이겨 대죽리 고향으로 돌아와 숨어 살았다. 그러던 중 사육신이 사형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르기를, “내 살아서 단종을 구하지 못할 바에야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하며 통곡하면서 지붕 위에 올라가 투신 자결했다. 동생 권수해(權壽海)가 상주인 철명(哲命), 철손(哲孫) 그리고 사위인 정난원(鄭蘭元)과 더불어 지보면 신풍리 피앗골(念松山)의 묘터에 외로이 장사 지냈다. 온 가족이 바닷가 영해로 유배되고, 자손은 오랜 세월 벼슬에 나아갈 수 없는 형벌을 받았는데, 이후 1785년에 후손 권종락이 억울한 것을 풀어달라 하여, 1789년 종부시 첨정 벼슬을 되찾아 양반 지위를 유지했다.

그리고 1791년 정조 임금이 수원을 거쳐 영월 단종릉으로 거동할 때, 경기·충청·경상 3도 선비 2천여 명이 그 길목에서 청해 충신으로 정려됐다. 정충각(旌忠閣)을 지보면 대죽리에 세웠다가 1862년에 무덤 옆으로 옮겨졌고, 1956년에 신도비가 세워졌다. 또 1791년 이조참판에 이어 1884년 이조판서로 추증되고 시호(諡號)를 충민(忠愍)이라 했다.
노봉서원 현판
1785년에는 월성군 강동면의 운곡서원, 1794년에는 호명면 내신리 신당(新塘) 마을의 노봉서원(魯峯書院)에 제향됐다. 권산해는 성격이 강직하고, 지조가 매우 굳고, 재주가 있었다. 권산해의 부인은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 권전(權專)의 딸로 문종 임금의 아내인 현덕왕후(顯德王后)의 언니다. 현덕왕후는 단종과 경혜공주를 낳았다. 그러므로 권산해는 문종과 동서 간이고 단종의 이모부다.

한편 권산해를 제향하는 노봉서원(魯峯書院)은 1794년 권산해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으나 1866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됐다. 이후 1921년 안동의 도산서원의 통문으로 병산서원, 호계서원, 역동서원과 경북도내 사림의 여러 문중에 의하여 동년 3월 18일 재건돼 현재에 이르렀다. 지금 몽양재(蒙養齋) 건척재(建陽齋) 상이당(尙彛堂)이란 현판을 가진 12.8m×3.6m의 강당을 비롯하여 6.65m×3.4m의 숭의사(崇義祠), 6.9m×2.15m의 정문 6.1m×2.2m의 신도문 등 총 32평 5동의 아담한 건축을 갖춘 이 서원은 내신리의 안동권씨 종중에서 춘추로 향사를 지내고 있다. 노봉서원이란 이름은 노산군(단종)을 숭상한다는 뜻이다.
노봉서원
서원은 내신 마을의 신당초등학교 옆 노사봉 아래 서향으로 좌정하고 있는 5동의 건물로 일곽을 이루고 있다. 제향 공간인 사당과 강학공간인 강당으로 나누어져 있다. 사주문을 통해 강당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고, 강당 뒤편에 전사청이 있다. 그 우측에 내삼문과 사당(숭의사)이 위치한다. 강당 좌측 협문 밖에는 관리사가 있고, 담장 바깥 울창한 송림 앞에는 연못이 있다.
숭의사, 죽림선생의 위패를 모시는 곳
전사청, 책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된 별채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이다. 서쪽으로부터 온돌방 2칸, 대청 2칸, 온돌방 1칸으로 이루어져 있고, 뒤쪽과 오른쪽에는 툇마루가 있으나 왼쪽에는 없다. 대청 2칸의 전면에는 사분합문을 설치하여 밀폐된 실내공간을 이룬다. 건물은 높은 자연석 기단 뒤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사용하였고, 지붕 가구는 삼량가로서 간소하다. 몽양재(夢養齋)·건척재·상이당이라고 양각된 현판이 걸려 있다.
몽양재, 원생들의 숙소
건척재, 원생들의 숙소로 사용됐다.
사당인 숭의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자연석 기단과 초석 위에 전면에만 두리기둥을 쓰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사용하였다. 기둥 사이에는 두 짝 살문을 내었고, 앞쪽으로 툇간을 두었다.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인 신도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솟을대문으로 되어 있다.

이상만 기자

    • 이상만 기자
  • 경북도청, 경북지방경찰청, 안동, 예천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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