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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경북을 걷다] 19. 성주 독용산성길

돌로 쌓은 성곽과 어루어진 수려한 풍경따라 역사를 걷다

윤석홍 시인·도보여행가   |   등록일 2018.12.09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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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복원된 성벽 모습
흔히 오지라 하면 흔히 강원도 깊숙한 산골을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살고 있는 도내 주변에도 첩첩 산골 오지가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경북 성주군 독용산(955m·禿用山) 일대는 성주군에 있는 ‘오지 중 오지’로 알려져 있다. 독용이라는 소리만으로도 예사롭지 않은데 대머리 독(禿)자의 뜻이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민둥산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독옹(禿翁)의 그것처럼 빛을 받아 반짝인다는 뜻인지 알쏭달쏭한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성주 독용산성길은 매우 독특하고 특별한 의미를 가진 길이다. 경상북도에 많은 길이 있지만 길 앞에 산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길은 독용산성길과 칠곡군에 있는 가산산성길이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길은 평탄하거나 유유자적하며 걷는 길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약간 난이도가 있어 접근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길을 걷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누구나 인생이라는 길을 걸으며 희로애락이 있는 것처럼 길에도 희로애락이 있다. 돌로 쌓은 성벽과 어우러진 수려한 풍경을 볼 수 있고 마음에 품고 있던 울적함을 털어낼 수 있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다르게 다가오는 풍경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남아있는 옛 성벽 모습
깊은 역사가 숨어 있는 독용산성은 영남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약 6km에 이르는 복원된 성곽길과 허물어진 옛 성곽을 따라 걷는 길은 수북하게 쌓인 낙엽과 함께 높은 곳에서 느낄 수 있는 풍경에 저절로 노래가 나오고 취하게 만드는 길이다. 돌로 쌓은 천혜의 요새였던 독용산성길을 걷는다는 것은 과거를 거슬러 올라 천천히 되새김질하며 그 당시 역사를 따라가는 길이다. 출토유물로 볼 때 1500여년 전인 4세기 중엽 성산가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통일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 1000여년 세월 동안 세인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가 임진왜란 때 왜군을 피해 피난을 가다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숙종 원년 1675년 관찰사 정중휘가 개축했다는 면적 170,000여㎡, 둘레 7.7㎞, 높이 2.5m, 너비 1.5m인 독용산성은 물이 풍부해 장기전에 대비할 수 있었고, 산꼭대기까지 포함해 돌로 축성했던 포곡(包谷)식 방식의 산성이다. 임진왜란 땐 전쟁의 화를 입지 않은 유일한 산성으로 확인돼 경상북도 기념물 105호로 지정되었다. 1997년부터 일부 복원을 시작하여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처음 축조된 성벽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화강암을 깨뜨려 쌓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아랫부분에 큰 돌을 깔고 위로 가면서 작은 돌을 흩어 쌓았으며 사이 사이에 잔돌 끼움을 하여 성벽의 틈새를 빈틈없이 메웠다.

성벽 망루
성안에는 동서남북 네 방향의 성문터와 수구, 포루, 망루, 객사, 군기고, 창고 등이 있었던 건물터, 연못과 우물터 등이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발굴 조사한 군기고에서는 쇠도끼, 쇠창, 쇠화살, 삼지창, 말안장, 갑옷 등이 출토됐다. 조선 말기에는 군사적 필요성이 없어지고 방치되면서 성곽과 시설물이 많이 허물어졌다.
복원한 동문 모습
최근 복원된 성곽 일부와 동문을 제외하면 당시 모습을 찾기 어렵다.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오른 후 마주한 독용산성은 그 위용에 발걸음이 저절로 멈추어진다. 독용산성길은 지형적인 여건으로 쉽게 찾거나 걷기 힘든 길이지만 한 번쯤 걸어 볼 가치가 있는 길이다. 출발은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 시엇골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걸어서 올라가도 되지만 일단 차로 금봉리 숲과 오왕사를 지나 좁은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독용산성 안내판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6.2km 올라가면 멀리 동문이 보이는 그리 크지 않은 주차장에 도착한다. 임도는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만큼 좁고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어 운전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꼬불꼬불 이어진 산길을 굽이 돌 때마다 빼어난 조망이 펼쳐진다. 첩첩이 겹친 가야산 준령들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가 멀어지고 까마득한 절벽 아래에는 작은 집들이 점점히 흩어져 있다.
복원한 성벽 모습
걷기는 주차장을 출발해 동문, 독용산 정상, 북문지를 거쳐 벽진 장군 대첩비가 있는 옛 마을터를 거쳐 임도 따라 동문으로 해서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오는 5,2km 길이다. 약 3시간 정도 걸린다. 독용산성길은 간간이 이어지는 성곽길을 따라 걷는다. 울창한 숲과 주변의 산세를 조망하는 재미와 곳곳에 숨겨진 과거의 흔적을 찾아보는 즐거움이 있다. 주차장에서 곧장 임도를 따라 걸어 올라가면 복원된 성벽을 만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성벽길을 따라 올라가면 동문에서 오르는 길과 나중에 만나게 되지만 무척 가파르고 힘이 들기에 임도 따라 동문으로 가기를 권한다. 동문은 주변의 치성, 성곽과 함께 최근에 복원된 것으로 아치형을 하고 있다. 복원된 동문 입구는 예전 돌과 새로운 돌이 가지런히 자리 잡아 정돈되었는데 그런대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동문 입구 주변에는 산성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을 한데 모았는데 불망비와 선정비가 대부분이다.
동문에서 오른쪽 성벽
비석이 있는 오른쪽성곽으로 향하면 독용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동문지에서 산성 보수를 위해 조사하는 분들을 만났다. 산성을 둘러보는 데 얼마나 걸릴지 물어보니 얼마 안 걸리고 금방이란다. 물론 선의의 거짓이라 그냥 웃어넘긴다. 사실 시골이나 길을 걷다 만나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먼 길도, 가까운 길도 금방이라고 한다. 어쩌면 걷는 것에 시간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복원한 성곽길
잘 축조된 성곽을 따라 오르니 처음 만난 갈림길에서 가파른 성곽길 따라 걸어온 길을 다시 만난다. 산 아래에는 물을 가득 담은 성주댐이 시야에 들어오고 멀리 햇살에 반짝거리는 대단위 비닐하우스 단지도 내려다보인다. 성주 특산품인 참외를 재배하는 하우스다. 잘 정비된 성곽길이 끝나면 숲길이 이어지고 심하게 무너져 산만하게 흩어진 돌길이 나온다. 세월의 흔적을 모진 풍파로 견디며 조금씩 닳아버린 길이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밟고 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담요처럼 푹신한 낙엽을 밟으면 서걱서걱 거리는 낙엽소리가 정겹다. 독용산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낡은 나무 이정표를 지나니 이내 헬기 착륙장이 있는 독용산 정상이다. 겹겹이 보이는 산자락과 산 아래 동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서쪽 방향으로 대덕산과 백두대간 능선이, 남쪽으로 가야산이 장쾌하게 솟아있다.
독용산 정상석
북문지를 향해 걷는다. 가는 길 곳곳에 허물어지고 무너져 내린 돌로 쌓은 성벽 흔적이 자주 보인다. 탁 트인 하늘 사이로 건너편 산 능선이 함께 따라온다.
북문 가기 전 무너진 성벽 모습
북문지에 이르니 숲이 우거진 상태로 있어 사람의 손길이 필요해 보였다. 아마 높은 곳에 있다 보니 장비나 인력 그리고 자재 운반 같은 문제 때문에 복원하기 힘들어 보였다. 북문지에서 울창한 숲을 내려가다 길이 막히는 곳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드넓은 초원지대가 나온다. 성곽을 따라 계속 가면 서문지로 향하고 초원지대로 이어진 길을 쭉 따라 가면 동문으로 가게 된다. 분지 모양을 한 초원지대는 객사와 군기고 같은 옛 건물지와 마을이 있던 자리지만 잡풀로 가득하다. 해방 전후에 약 40여 가구가 살았으나 1960년도에 모두 철거했다고 한다. 임도 따라 가다 보면 왼쪽에 벽진 장군 대첩비가 세워져 있다. 벽진 장군은 벽진 이씨 시조인 이총언(李悤言)으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개국 공신이다. 대첩비 주변에는 독용산성에 오면 꼭 마셔야 한다는 옛 우물터가 있다는데 보이지 않는다. 또한 주변에 비닐하우스가 있는 것으로 보아 최근에 농사를 지은 흔적을 볼 수 있다. 대첩비를 지나 오후 햇살이 내려앉은 길을 따라가면 처음 만났던 동문에 다다른다.
독용산성 선정비
우리나라에는 유난히 산성이 많다. 산악지형인 이유도 있지만 잦은 외세 침략으로 이를 대비하기 위해 산성을 축조했기 때문이다. 주변보다 높은 산성을 쌓으니 조망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을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이 산성을 쌓아 올렸던 우리 선조들의 고되고 힘든 땀의 대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독용산성길은 선조들의 아련한 숨결이 진하게 서려 있는 역사의 현장이며, 뛰어난 풍경과 호젓한 숲 그리고 성벽을 따라 이루어진 걷기 좋은 길이다.
▲ 글·사진= 윤석홍 시인·도보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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