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단 한 권의 책
속수무책
대체 무슨 대책을 세우며 사느냐 물으면
척 하고 내밀어 펼쳐줄 책
썩어 허물어진 먹구름 삽화로 뒤덮여도
진흙참호 속
묵주로 목을 맨 소년 병사의 기도문만 적혀 있어도
단 한 권
속수무책을 나는 읽는다
찌그러진 양철 시계엔
바늘 대신
나의 시간, 다 타 들어간 꽁초들
언제나 재로 만든 구두를 신고 나는 바다 절벽에 가서
대체 무슨 대책을 세우며 사냐 묻는다면
독서 중입니다, 속수무책





<감상> 손을 묶인 듯이 어찌 할 방책이 없어 꼼짝 못하게 된다는 뜻의 한자어인 ‘속수무책’을 책(冊)으로 언어 유희한 발상이 좋습니다. 무슨 대책을 세우고 사냐고 물으면 속수무책이라는 책을 읽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고 싶어지네요. 햇살이 아닌 먹구름으로 뒤덮여도 전쟁에서 목을 맨 소년 병사의 기도문이라도 좋아요. 소용이 다한 나의 시간들, 의지할 데 없이 바다 절벽이라는 극지(極地)에 서 있더라도 속수무책일 것입니다. 본인이 세상에서 전지전능하다는 오만한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한 자들도 종국에는 속수무책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네요.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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