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를 내기 위하여 지난 한 해 내내
산을 허물고
자르고,
그래서 생긴 절개지


한겨울 지나고 나니,
온갖 잡풀들 다시 어우러져
꽃을 피우며
벌겋게 드러났던 흙의 살점들 덮고 있구나.


머리를 깎고,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마취를 하고, 한참을 죽었다가 깨어나니
사라진 그녀의 오른쪽 가슴


차량들 저마다 저마다의 힘으로 씽하고 달려 나가는
그 사이, 사이
설핏, 기우는 저녁노을 속
그녀의 절개지, 붉게 물드는 브래지어
아프게 감춰지고 있다.




<감상> 발달된 문명의 이기(利器)들은 손쉽게 산을 구멍 내고 허물고 자르고 만다. 아름다운 곡선인 산등성이가 사라지므로 동물들은 길을 잃고 안개마저 머물 여유가 없다. 잠시 잡풀들이 절개지의 상처를 덮고 있을 뿐, 산의 영혼은 파괴된다. 속도의 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모성적인 땅이 파헤쳐진 모습에서 시인은 여성의 오른쪽 가슴이 없어지는 걸 본다. 인간들은 속도에 몸을 맡기면 산의 속살들이 붉게 물들여 있다는 걸 느낄 수가 없다. 더군다나 거대한 대지가 우리네 몸과 맞닿아 있음을 망각한 채 두부 자르듯 계속 절개지를 만들고 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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