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공존·공생의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시민'으로 도약 시작
반세기를 지탱해 온 포스코 정신(情神)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1968년 4월 1일 포항제철주식회사 창립 때의 이념이 ‘제철보국(製鐵報國·철을 만들어 나라에 보답한다)’이었다면 반세기가 지난 2018년, 최정우 회장체제 출범 이후 비전은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기업시민’을 뜻하는 ‘위드 포스코(With POSCO)’로 바뀌었다.
포스코가 앞으로 100년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이념을 뛰어넘어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로 재무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지만 창립 당시 ‘제철보국’과 ‘철강은 국력’그리고 ‘우향우 정신’ 또 지금도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 정문을 장식하고 있는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이라는 포스코의 철학은 국민기업 포스코를 든든히 떠받치고 있는 힘이다.
1)제철보국, 그리고 우향우 정신
△제철보국1978년 3월, 박태준은 제철연수원(지금의 인재창조원) 특강에서 이렇게 말한다
“창업 이래 지금까지 제철보국(製鐵報國)이라는 생각을 잠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철은 산업의 쌀입니다. 쌀이 생명과 성장의 근원이듯, 철은 모든 산업의 기초소재입니다. 따라서 양질의 철을 값싸게 대량으로 생산하여 국부를 증대시키고, 국민 생활을 윤택하게 하며 복지사회 건설에 이바지하자는 것이 곧 제철보국입니다. 우리는 국민과 인류에게 복락을 줄 수 있는 제철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우향우 정신
우향우란 군대식 제식훈련 용어지만, 포항제철소에서 우향우를 하게 되면 영일만, 동해바다이다. 결국 우향우 정신이란 ’죽기 살기로 달려들고, 실패하면 바다에 빠져 죽자’는 결기를 의미한다. 포스코 건설당 시 초기 멤버들은 마치 전쟁에 나간 ‘전사’처럼 전쟁을 하듯 제철소 건설에 매달린 것이다.
대통령은 한숨을 내쉰다. “이거 남의 집 다 헐어놓고 제철소가 정말로 되기는 되는 기야?”
그날 이후 1기 준공까지 평소 즐겨왔던 술을 끊고 골프도 그만두었다. “목숨을 걸자. 실패하면 우리 모두 사무소에서 똑바로 걸어 나와 우향우 한 다음 영일만 바다에 몸을 던지자”.
이렇게 시작된 ‘우향우 정신’은 건설 요원들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에너지가 되었다.
이러한 포스코 정신은 오늘날도 이어지고 있다. 지금의 포스코 윤리헌장에 따르면 “희생과 봉사를 근간으로 하는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창업정신을 계승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반영한다”는 표현과 “선혈의 피와 창업세대의 땀으로 이룬 포스코를 우리 모두가 자랑스럽게 지켜가는 길”이라는 문구를 새겨 두고 있다.
2) 그리고 With POSCO
올해 제9대 회장으로 취임한 최정우 회장은 제철보국의 이념을 그대로 계승해 포스코그룹 스스로가 사회의 일원이 돼 경제적 수익뿐 아니라 공존과 공생의 가치를 추구하는 새 기업 비전 ‘With POSCO(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기업시민)’을 선언했다.
특히 제조업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포스코 입장에서 지역사회는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다. 지난 50년을 함께 동고동락해 온 지역사회에 대해 포스코가 어떤 관계설정을 유지해 가느냐가 앞으로 더불어 발전을 모색하는 With POSCO의 성공적인 수행과 직결될 것 같다.
△포항제철소 첫 제품 압연공장에서 출하
10여 년 동안 포스코 출입기자로 제철소 주변을 수도 없이 들락날락했지만 포스코의 겉모습만 보아 왔다는 사실을 이번 1년간의 연재과정에서 깨달았다.
포항제철소의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은 포철의 첫 제품은 1973년 6월 9일 용광로에서 시뻘건 첫 쇳물이 나왔을 때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첫 출선보다 11개월이나 거슬러 올라가 첫 출하제품은 압연공장에서 나왔다. 반제품 상태로 수입한 ‘슬래브’를 가공해서라도 하루바삐 생산해 철강 부족에 허덕이는 국가경제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현역을 떠난 지 10년 만에 다시 ‘50살 포스코’를 더듬어 본 경험은 새로웠다.
포항과 광양제철소 생산현장과 서울 포스코센터, 그리고 국정감사장과 주주총회장 구석에서 포스코의 일부분을 느꼈지만 여전히 ‘속살’을 들여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박태준과의 만남. 그가 낭인시절 아무도 찾아오지 않던 경주 보문호를 여러 번 걸으며 나눈 대화, 포항시민 공원 부지를 물색하기 위해 노란색 포스코 헬기를 타고 영일만 상공을 날랐을 때의 기억, 십여 년 만에 만난 포스코 퇴직임원(OB)의 무용담 … 이런 팩트들을 조각조각 모으다 보니 겨우 어설픈 모자이크 한판이 된듯하다.
지난 1월 1일부터 시작한 연재가 1년 만에 마침표를 찍는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2주마다 부족한 글과 사진을 잘 편집해준 경북일보와 독자들에게 고맙다. 팩트에 신경 쓰다 보니 재미없는 글이 되어 정말 죄송스럽다.